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최경숙 시인 / 괜한 걱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30.

최경숙 시인 / 괜한 걱정

 

 

오지랖이 넓었다

 

빨간 외발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제 힘으로 세상을 버틸 수 있을까

 

하얀 파라솔 아래

긴 의자 세 개 놓고 강바람 불러 앉힌 곳

외발 비둘기는 오늘도 혼자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도르륵도르륵 눈알 굴리더니

양쪽 날갯죽지 한껏 들썩거리며

한 발로 폴짝폴짝 뛰어 먹이를 찾는 척하다가

 

획 돌아서서

한쪽 발목의 힘으로 공중을 휘감고 날아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뽕나무 위를 건너고 늙은 느티나무를 가뿐히 훌쩍 뛰어넘어

가로등 꼭대기에 사뿐 앉았다

 

비둘기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경숙 시인 / 또 다른 세상

 

 

강물 턱밑에 바싹 다가섰네

 

세상에!

아무리 겨울 가뭄이라도 이토록 적나라하다니

사람 사는 세상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강물 속 세상이 또 있었네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일가를 이루고 있네

 

생김새가 다른

세모 네모 크고 작고 둥글고 납작하고 찌그러진

돌들이 모여 마을이 되었네

 

강줄기 따라 걷다 보면

검은 조약돌 집성촌도 만나는데

어찌나 매끄럽고 반질반질한지

모두 성형한 얼굴들이네

 

버리고 내려놓고

요동치는 가슴 부여잡고 고요하게 살아왔더니

가끔 피를 뽑아 내 속을 들여다보면

의사는 다행히 양호하다 하네

 

요즘 중용中庸을 맨가슴에 붙이고 산다네

강물 속 세상은

은하수 세상처럼 맑고 온유해 보이더니

나보다 먼저 중용을 알아버렸네

 

 


 

최경숙 시인

충남 서산 출생. 2007년 「에세이 21」 등단. 수필집 『아버지의 보따리』, 시집 『부다페스트 해바라기』 한국문인협회 송파지부 이사. 제30회 두레문학상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