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만 시인 / 오독誤讀 1
너, 큰 실수한 거야 나를 잘못 읽었어! 사람이 한세상 살면서 행간과 행간 사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넌 모른 거야 오독誤讀은, 오, 독毒이란 걸 알아야지 행간과 행간 사이 때로는 쉼표와 마침표에도 스며 있는 순수한 영혼 빛살과 바람의 그림자도 읽어야지 너, 정말이지 큰 실수한 거야 나를 잘못 읽었어! 얻어도 놀라고 잃어도 놀라는 세상에 혼자, 혼자, 라는 것도 지우고 조용히, 조용히, 라는 것마저 버려 나에게 내 몸이 없으니 나에게 아무 근심도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온전히 읽었어야지 덧칠하고 비틀고 뒤집는 오독誤讀이야말로 오, 독毒이란 걸 알아야지 너, 큰 실수한 거야 나를 잘못 읽었어!
허형만 시인 / 가랑잎처럼 가벼운 숲
숲길 누리장나무 아래 검정 상복을 입은 개미들이 참매미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이미 여름은 끝났는데 한순간의 작렬했던 외침은 지금쯤 어느 골짜기를 흘러가고 있을까. 오후 여섯 시, 햇살이 서서히 자리를 뜨는 시간 부전나비 한 마리 누구 상인가 하고 잠시 기웃거리다 떠나가고 이제 곧 가을이 깊어지리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숲을 끌고 가는 개미들의 행렬 숲은 가랑잎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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