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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차현주 시인 / 브웨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30.

차현주 시인 / 브웨이*

 

 

눈썹 위에 햇빛

손등 위에 칼날

접시 위에 접시가 포개져 있다

 

종이가 종이를 감당하고

글자가 글자를 버티면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할 거야

 

속마음이 겉마음을 돌다 하는 백허그

파란 양상추 안에 작은 올리브

숨은 것에 가까웠다

 

입술에 손가락이 세로로 포개져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고

비린내가 골목길을 메우자 길고양이는 생선 꿈을 꾸었다

깨금발로 골목을 나서면

 

목소리 위에 귀마개가

노란 머리 끈 위에 목 졸린 참새가

새끼손가락 위에 배반이

차곡차곡 포개져

 

약속 위에 배신

그것은 당연한 것

 

옆자리에

좋아하는 짝꿍이 앉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벌써 잊었겠지만

 

원하는 순서대로 포개지는 것은

매장에서 주문할 샌드위치뿐

 

계간 『시인수첩』 2022년 봄호 발표

 

 


 

 

차현주 시인 / 생각하는 사람의 식탁

 

 

접시에 사과가 있으면 좋겠다

딱 좋은 그림이겠다 생각하니 사과가 놓였어요

제가 가져다 놓았기 때문인데요

 

사고도 같이 놓였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제 머리를 자르고 있습니다

정말 딱 좋은 그림이겠다

 

배경으로 통유리가 햇살을 가득 머금다 분무하고

식탁 위에는 정교하게 직조된 식탁보가 중세의 그것처럼

펼쳐져 있어요 약간의 주름도 모두 생각에서 나온 것

 

참된 고무나무로 만든 어두운색의 식탁입니다

나무의 결은 그대로 살렸고요 그 위에 접시

하얗고 브랜드명도 쓰여 있지 않은 겸손한 접시

통통 두드리면 통통 출신이 남다름을 알려주는 그런 소리가 울리는

 

이런 미장센

그렇게 사과를 가져다 놓았고

생각하는 사람의 식탁이니

사고를 가져다 놓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중이고

 

뒤로 새도 지나가면 좋겠다

하니 몸이 창밖으로 향합니다

새 두 마리가 평화롭게 지저귀는 연출을 위해서요

어디 보자 새가 둥지에 있겠지요?

너무 크지 않은 적당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평화로 이끄소서

생각에도 책임을 지라는 건 신의 말이었는데요

 

매일 하는 기도입니다

 

무크 『씨글』 2022년 제2호 발표

 

 


 

차현주 시인

1986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2021년 《서정시학》여름호 신인상을 통해 등단.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