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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일규 시인 / 첫눈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0.

강일규 시인 / 첫눈

한 사나흘

보이지 않아 갔나 싶었는데

다시 돌아왔네?

 

불쑥 돌아오는 그 성질은 여전하네

너는 그게 탈이라니까

 

바람 끝이 차가운데 올 거면 시끄러움이라도 피해 오지 그랬어

어젯밤 내린 첫눈이라도 밟아가며

 

여전히 첫눈은 안간힘이겠지만

아무리 아닌척해도 너를 이길 재간이 없어

너에게 닿아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는데

 

사람의 뒤축 같은 여행지에 함부로 와 있는 기분이야

우리가 서로를 되도록 멀리 보내려했던 그날처럼

 

다가섬을 밀어 버린 골목과

구름을 덮은 회색의 열감들

 

한 때 나눠먹었던 군고구마와 붕어빵에서

이제는 새까맣게 탄 냄새가 나는 것처럼

 

네가 잠시 되돌아온 게

한창 겨울이 시작돼서 그렇다했지

그럼 잠깐 이리로 와

되돌아 갈 때 가더라도 몸은 좀 녹였다 가

 

빛 들거든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녹는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강일규 시인

2017년 《문예바다》 신인상으로 등단. 2022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그땐 내가 먼저 말할게』가 있음. 2022년 세종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