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 시인 / 풍등이 가는 곳
닿을 곳도 없이 어둑어둑 저무는 바다를 본다
남자가 모래톱에 앉아 풍등에 불을 붙이고 있다 등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불빛에 비치는 남자의 얼굴은 낯선 아시아 사람
그의 열 받은 상처와 슬픔이 찬 술을 덥히듯 폐 가득 달구어져 지등 안을 팽팽하게 채울 때까지 바다는 알 수 없는 말로 부풀어 끓어오르고
등이 떠올랐다 칠흑 바다 위로 환하게 비행하는 불덩어리 한참을 바람을 타고 흔들렸는데 보이지 않는다
지금 풍등은 그가 살던 마을까지 흘러간 거다 뇌도 가슴도 내장도 눈물까지 다 싣고 가버려서 텅 빈 껍데기 같은 사람이 오랫동안 모래톱에 앉아 있다
김윤 시인 / 저 등
저 사람, 등으로 말거는것 봤니? 다친 등뼈 한 마리, 들판 하나를 품고 울림통이 되는 것
미추쯤에서 목쉰 소리 휘돌아 감는 것 들었니? 질척이는 골목길 폐쇄 회로 카메라 속에 잠긴 늙은 느티 같이 어둔
등판 가득 소리를 으깨며 젖어 있는 뼈들 디스크마다 우물 하나씩을 감추고 부서진 기억들 첨벙거리는 소리 들었니?
식구들이 잠든 캄캄한 방 앞에 저 사람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봤니? 어둠 속 솜같이 젖은 허파를 상한 등으로 바라보다가 낡은 모니터가 물속처럼 얼굴울 비출 때 손바닥 가득 깨알 같은 글씨로 소장(訴壯)을 써 들고 어디론가 기차를 타려고 긴 줄을 서는 것
그 기차 가득 고장 난 TV가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불 환히 켜고 흘러가는 것 봤니?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여원 시인 / 소금성전 외 1편 (0) | 2023.02.14 |
---|---|
김철홍 시인 / 선과 색 혹은ㆍ8 외 1편 (0) | 2023.02.13 |
강봉덕 시인 / 저글링 외 2편 (0) | 2023.02.13 |
최휘 시인 / 아무 이름으로 불러도 (0) | 2023.02.13 |
황형철 시인 / 배추밭 외 1편 (0) | 202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