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원 시인 / 소금성전
염전에게 하늘은 신전 너울에 떠밀리던 바닷물이 쉬어가는 마지막 성지였다 소금은 아버지가 기르는 양떼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빛에 궁굴려진 육각의 계명들이 고무판에 새겨져있다
소금밭의 주인은 하늘 하늘 한 조각에 바다 한 움큼씩 들여보내라는 말씀대로 꽁무니바람이 물의 둘레를 지킨다 여우비가 잠깐 다녀간 뒤 먹구름이 몰려오면
소금기둥이 된 한 여인의 울음소리 들려오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해주에 소금물을 저장했다
아버지의 짜디짠 기도가 무릎을 적실 때 나는 바닷물이 허물 벗는 것을 보았다
바다의 영혼이 산다는 염부의 신전 바람에 등을 떠밀려온 새떼구름이 고봉으로 얹은 바다를 외발수레에 몰고 온다
햇살이 긁어낸 묵상의 시간이 끝나면 그득한 소금자루를 지고 태양은 뉘엿뉘엿 창고로 들어간다
-시집 <구름의 첫 페이지> 2018
권여원 시인 / 제 아픔의 무게
내 몸에 가시가 돋을 때 그는 꽃잎이 떨어지는 고통을 듣게 하셨다 내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 그는 광야에 태어난 이슬방울의 산통을 보게 하셨다 집 없이 떠돌아다니던 내 어깨에 새들이 둥지를 위해 물고 가는 한 잎의 무게를 달아주셨다 한파 속에서 홀로 웅크릴 때면 도시의 비둘기가 언 발로 모이 쪼는 것을 보게 하셨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할 때면 더 많은 가지를 얻기 위해 묵은 가지를 쳐내는 나무의 통증을 알게 하셨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가외로 밀려나던 시절엔 추락하는 빗방울이 땅을 기름지게 함을 깨닫게 하셨다 그래도 못 살겠다 소리치는 겨울나무 같은 내 입술에 연둣빛 새순이 파릇파릇 돋게 하셨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제 아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고 나는 살아있어서 지금도 아픈 거라고
-시집 <구름의 첫 페이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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