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덕 시인 / 저글링
무엇이든 던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던지고 사무실에서 의자를 던지고 모자를 던지고 퇴근길에 버스를 던지고 가방을 던지고 침대를 던지는 버릇이 생겼다
지하도를 내려가면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 불안한 발을 잘라 주머니에 넣고
낙하와 상승의 경계에서 눈치를 살핀다
조간신문 숫자들이 흩어졌다 멈추고
모니터의 붉은 화살표가 멈추고
난, 구두를 던지고 중심의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바닥에 닿기 전 다시 머리통을 던지고 바닥에 닿기 전 다시 정강이를 걷어차고 바닥에 닿기 전 다시 몽둥이를 휘두르고
바닥에 닿을 수 없는 발을 길게 내린다 내가 추락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도망가는 바닥 발이 길어질수록 같은 극의 몸처럼 바닥은 더 밀려나고
손발을 묶고 귀를 자르고 코를 낮추고 던지기 쉽게 단단해진다 높아지지 않으면 불안한 몸은 잠을 자면서도 두 발을 번갈아 들어올린다
-『울산문학』 2021년 가을호
강봉덕 시인 / 내일
붉은 문에 들어가면
어디에 도착할까
건너편은 보이지 않아
강봉덕 시인 / 태평양 횟집
태평양에 물고기를 방목하는 횟집이 있다 손님이 오면 빵모자 눌러쓴 주인아저씨가 뜰채를 바다에 넣고 물고기를 기다린다
풍랑을 만난 듯 바다가 한번 요동을 치면 싱싱한 태평양이 팔닥거리며 올라온다
저 넓은 방목장에서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늘 궁금한 나는 바다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발바닥으로 쿵쿵 바다를 놀라게한다
태평양이 출렁거릴지 깜짝 놀란 물고기가 튀어 오를지 몇 일째 수염을 깍지 않은 주인이 입술을 오므리며
쉿, 물고기가 다 알아 천천히 바다가 되어 바다를 걸어 올린다 빈 뜰채만 들어 올린다
태평양 귀퉁이 구룡포 바닷가엔 물고기를 바다에 방목하는 횟집이 있다
파도는 늘 마당 지나 뒷문을 두드리고 밤마다 물고기와 연애를 한다는 주인은 주문이 밀려있어도 빈 뜰채만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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