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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미령 시인 / 흑교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3.

김미령 시인 / 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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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가 다리 위를 가고 있었다. 끊어진 목줄을 끌며 지나는 동안 낙엽이 쓸려가며 길을 내었다.

 

 지나는 개는 지나게 하고 눕는 개는 눕게

 경계하는 개는 경계하도록

 그냥 둬야지.

 그러는 동안 숲은 한쪽 구석에서부터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개가 지난 뒤 공중에 손 내밀었는데 돌이켜보니 무엇에게 내밀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진짜 돌아서서 내게 달려오면 어쩌나

 그러나 그것이 개가 아니면 어쩌나 조금 무서웠는지 모른다.

 

 한동안 개를 잊고 지냈다.

 슬픔은 슬픔의 몫을 하고 여름은 여름의 몫을

 주머니 속 조약돌은 머지않아 가라앉을 강 밑바닥의 공포를 감당하고 있었는데

 각자의 시간을 벼리는 동안에도 시절은 순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CCTV에서 본 개는 무척 여위었고 바닥에 누운 아이는 사지를 뻗은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개가 달아나는 동안 가로등 아래의 나는 꼼짝하지 않았고

 거기서부터는 무엇이 개의 일인지 나의 일인지 알지 못한다.

 

 얼마 후 그 다리 아래를 내려가 보았다.

 다리 밑 어둠을 한참 들여다본 일은

 아무에

​​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김미령 시인

1975년 부산 출생. 부경대 국문학과.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 『파도의 새로운 양상』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