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홍 시인 / 선과 색 혹은ㆍ8
나 밖에 없어요 기억들이 따라왔어요
밤 위에 내가 떠 있어요 어둠이 내밀었어요 문득 밖을 보았는데 발들이 걸어갔던
발자국 없는 신발을 밖으로 내밀었어요 밖과 안 사이를 당기며
시선을 불어 창문을 지우고 사람들이 튕겨 불빛을 밟고 지나가요
밖은 안으로 나가 있어요 나 밖에 내 안이 없어요
안은 밖으로 들어와 떠 있어요 나 밖에 내 안만 있어요
오늘, 나밖에 없는데 나는 밖에 있어요
김철홍 시인 / 선과 색 혹은ㆍ12 ㅡ동주와 나ㅡ
발가벗은 허공, 고개숙인 각, 그는 시가 쉽게 씌어져 부끄럽다고 했다. 흔들리는 선, 두려운 색, 사는 게 부끄러워 나는 붉은 부끄러움을 태우고 태우기 위해 시를 쓰는데‥그는 그에게 작은 손 내밀어 눈물과 위안의 최초 악수를 하지만, 나는 나에게 비겁을 내밀며 버티는 것도 저항이라고 희망의 악수를 이 시인과 김 시인에게 하였다.
학사모를 쓴 어두운 밤, 그는 별을 헤아렸지만, 나는 마오쩌둥 모자를 쓰고 어둠이 스며든 차창 속 부끄러움을 헤아린다. 노란 어둠, 붉은 어둠,시커 먼 어둠, 어둠 속 나를 헤아린다. 어둠은 몰아치고 고양이 눈빛이 눈을 찌르며 달려온다. 고난의 직격, 밤은 보이지 않고, 통증을 느끼는 자작나무, 나만 보여요, 어둠에 걸터앉은 나를 태우고 태워요
눈을 뜬 선, 네모의 하늘은 비스듬히 기울고, 학사모가 벗겨진 그의 묘지 위, 여행객들의 발자국만 나부끼고, 나는 그의 시집에 기대어 허공의 뒤태를 셔터에 담는다.소리 가득한 침묵을 태워버린 버스 뒷자리 담화, 동주 부끄러움 보다 더 익어가고 비석이 되고 낭송이 된다.어둠이 뛴다 나는 풀어지고 안개가 도주한다. 가는 나도,오는 나도 없이 동주 우물에 빠져 참회록을 쓴다.
나도 그와 같이, 시가 쉽게 씌어져 부끄러워 할 수 있을까?
「시와세계」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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