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기 시인 / 오십견 이미 생의 중반을 훌쩍 지나버린 거야. 그러니까 수평이 무너진 거야.
엊그제까지는 오른쪽에만 주로 무게추를 올려놓았던 거 오른쪽만 따뜻한 아랫목에서 거두어왔다는 거 너는 알기나 하는 거야? 왼쪽을 늘 업신여기고 따돌려서 시르죽어 있었다는 거 왼쪽은 그늘받이에서 눈칫밥 먹으며 견뎌왔던 거 너는 알아챈 적이라도 있는 거야?
왼손으로는 이제 뒷주머니의 비밀도 꺼낼 수 없어. 머리 위로 치켜들어 희망을 부를 수도 없어. 차마 중심을 무너뜨릴 수 없어서 견뎌 왔던 결기가, 왼쪽 견갑골에 숨어있던 저 질긴 울분이 이제 기우뚱 트집을 잡는 거야, 파업에 든 거야.
한쪽을 보태거나 덜어내도 소용없어. 오른쪽과 왼쪽은 애초에 연대보증을 섰으니 갈아엎기 전에는 중심잡기 힘들어. 우리 삶에 세월이 자비를 베풀지는 않는 거야. 물그림자처럼 흘러가는 시간이란 없는 거야.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익진 시인 / 인간의 굴레 (0) | 2023.02.14 |
---|---|
곽효환 시인 / 그해 겨울 외 1편 (0) | 2023.02.14 |
이제인 시인 / 과외 선생 외 1편 (0) | 2023.02.14 |
김향미 시인 / 통렬(痛烈)의 발견 외 1편 (0) | 2023.02.14 |
김재덕 시인(운중) / 가슴과 본능 사이엔 외 2편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