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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향미 시인 / 통렬(痛烈)의 발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4.

김향미 시인 / 통렬(痛烈)의 발견

 

 

사무실 바닥에 쓰러지는

사기 분(盆) 깨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깨진다는 건

오래 지키던 것들이나 품었던 속을 드러내는 일

 

날카로운 파편

어우러져 하나의 통을

둥근 품을 이뤘던 것들

포장하는 둥'E을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키가 크고 우아한 이국풍 문양의 화분

박살난다는 건

자기를 잃어버리는 모멸인 줄 알았다

 

얽히고설키게 감싸던 뿌리를 팽개치듯

상처 난 마음

삐죽빼죽한 창이나 칼날 같더니

 

파편들, 모멸의 조각들

잘근잘근 밟아준다

제자리 찧는 듯, 발바닥 아래

다시 터지는 파열음

 

빠드득, 결 잃어가는 소리

바닥과 바닥을 찌르며 더 잘게 해부되는

통 – 분

 

금기(禁忌) 하나 지워진 자리의 공허는

아름다운 잔혹

모멸이 박살나는 순간이다

 

담지 못할 말을 담아내고 되뇌어 보는

희열에 감전되듯

 

장렬한 무(無), 깨어져야 보이는 세계를 만나다

 

 


 

 

김향미 시인 / 테니스, 테니스

 

 

절묘한 발리,

네트를 넘어 이동하는 날개가 있다.

 

오래된 思考를 혀끝으로 굴릴 때

껍질을 벗는 향기

 

새들은 어느 곳에 앉아도

in,

 

낯익은 계절을 지나간 캐논볼처럼

뜬구름의 방향은 코트의 바깥이다.

 

줄탁의 둥지를 버리고 열리는

경로

 

同色 쪽으로 깃털을 모으며

부리의 중압으로 내려앉는 습속

 

깨지는 공은 좀처럼 없다.

다만 깨지거나 찢어지는 규칙이 있다.

 

두고 온 무엇의 무게가

백스핀으로 내려앉게 하는가.

 

찌그러졌던 날개가 펴지면서

궤적이 되고 착지점이 되듯

 

打點을 벗어나 打點에 돌아오는

나뭇가지들의 백핸드 발리

 

밀봉된 바람의 팔 할이

박차고 오르는 비행이다.

 

작은 테니스 공 안에는

몇 짝의 날개가 튀고 있을까.

 

모든 바람엔

가죽과 고무로 된 껍질이 있다.

 

승점을 주고받는 타이브레이크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룰과 룰, 대변되는 말의 규칙과 규칙 속에

모든 종류의 새들이 있다.

 

 


 

김향미 시인

1966년 경북 안동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유심》 신인상을 통해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