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아 시인 / 블랙 스완
하나의 손가락으로 빛을 가른다
그 색은 어떻게 된 거야? 사뿐사뿐 실루엣을 반짝이며 심드렁, 하품을 하는 애송이들로부터 작은 속삭임이 흘러나온다
설렘과 두려움을 버무린 구름은 이전에 보지 못한 꿈과 비명의 메아리를 아로새겨 검은 드레스를 입힌다
나를 둘러싼 바깥쪽으로 회전하는 순록의 태풍은 보호막,
엄마의 무릎 위 곱게 잠들어있는 나의 이마 주름 사이, 아브라카다브라, 겁내지 마 내 등으로 흘러나온 두근두근 마그마는 접힌 근육과 관절을 쭉 뻗으려는 하나의 번데기였고
발바닥에서 좌절되어버린 백설들의 음모, 침묵으로 수천 번 단단히 봉인된, 너와 같아질 수 없어 짙은 먹구름을 걷어내는 방식일까 불길을 향해 날아가는 첫 날갯짓 더 빨리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새 드레스이자 수의였어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듯한 세상의 지도, 그 세계 모형을 축소해 놓은 알록달록 유리알처럼, 원이라는 집착은 나를 폭발시켜 겹겹의 검은 치마를 입고 옹이 진 발가락 사이로 바르르 떨며 어지럽게 회오리치며 나는 흩어지고 있어
우화를 마친 하루살이의 공중비행처럼
안수아 시인 / 우리는 안데스를 떠난다 한 덩이 개미가 표류 중이다 붉은 가랑잎을 타고 물속에 잠긴 도시를 알을 움켜쥐고 떠나는 불개미들 돌아서서 굳은 혀로 무슨 말을 할까 서로의 다리로 깍지를 낀 가랑잎 물속으로 뛰어든 용기는 불 위 프라이팬으로 뛰어드는 낭패 무리수 위를 불타는 가랑잎이 떠내려가요 안데스, 소용없어요 안데스, 네 멋대로 하세요 당신은 홍수의 안데스를 본 적 있나요 당신은 오로지 당신으로 홍해를 건너보았나요 당신은 해가 되고 노가 되어 보았나요 하찮은 오늘은 우리를 버렸고 우리는 우리만 안 됐다고 툴툴거렸고 하찮은 우리도 안녕의 시간 변심한 도시를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픈 우리에겐 알과 홍수와 불안과 오늘보다 조금 더 높거나 조금 덜 높은 수위의 안데스가 있었다 우리는 안데스 홍수를 건너고 있다 -시집 『롤러코스터를 타는 오렌지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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