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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희정 시인 / 조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2.

강희정 시인 / 조퇴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강희정 시인 / 숫눈길

 

​​

병원을 단골 식당 다니듯

무시로 드나들던 그였다

나 가냐, 정말 가는 거냐

흰 안개꽃 송이가 허공에 내리는 날

그는 길고 긴 잠에 빠져들었다

더디 움직이던 지팡이도

그날 이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오랜 잠을 예보하듯 사위는 조용했다

환영 같다

제비나비가 꽃무리에 앉더니

정지된 흑백사진이 되어 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그를 보내는 마음은 처음이라

서툴러서 겁이 나서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눈송이가

소리 없이 뜰에 쌓이고 있었다

​​​

ㅡ 『시와문화』 (2022, 여름호)

 

 


 

강희정 시인

1974년 전남 화순에서 출생.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22년 계간 《시산맥》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