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시인 / 양말의 출구
현관 입구에서 벗어놓은 저녁이 헐거워져 늘어난 당신을 버리고 다시 쓴 이력서 출구 없는 출구를 신고 있다
면접을 오를 때마다 밀리며 질문에 막혀 숨을수록 안으로 말려 들어가 버린 발목 미래를 추켜올렸지만 당길수록 흘러내리는 바닥의 비애가
새로 산 구두에 헤진 양말 같은 표정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아 뒤집혀진 밴드 한쪽으로 쏠린 교통카드처럼 고개를 내밀고 갈라진 새끼발가락으로 누워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집착 속으로 쌓아놓은 마찰을 막지 못해 낮은 곳에서 더 낮아져 버린 발자국에서 빠져 나간 퀭한 뒤꿈치의 외로움
건조대에 널어놓은 취준생이 뚝 뚝 흘러내리고 있다
김윤식 시인 / 바다 납골당
활어처럼 싱싱한 마지막 파란 유리 속에 물거품만 보였지
한 쪽으로만 쳐다보던 짝 유리가 달린 여인숙에서 납작하게 엎드린 눈물을 흘렸다 헤어지고 두근대는 심장이 찢어지도록 힘든데 술잔 저편으로 묽어진다 칼날 같은 해풍이 산란하는 목덜미로 가슴을 열고 썩어가는 내장을 꺼내는 바람 한 장 껍질을 넘길수록 선명해지는 기억들이 터진다
서늘한 반 평의 방 속살 한 점 당신을 묻었네
김윤식 시인 / 칼국수의 시간
하루 종일 창밖은 늘어진 국수다발이다 빗줄기 글썽거리는 양푼 같은 쪽방에 뒤척거리며 마주한 얼굴 일용할 양식을 치대며 반죽되는 날들이
한 몸에서 빠져나온 여러 줄기 상처로 하루치 품삯을 소주병으로 밀어내면 허기만큼 자라나 오늘을 긋는 굵은 면발
질리지 않게 산다는 건 가슴 속 칼날로 숨겨야 한다는 것
불안의 속도로 지나간 자리 도마 위에 가지런하게 엎드려 정갈해진 저녁의 두께들이
툭 툭 끊어지는 허공을 불어 한 가닥에서 후, 한 가락으로 후 후 이어가며 일용직 구함으로 건져 올리는 밤 추운 가로등 빗줄기사이로 뜨겁게 풀어지는 내일이 온다
김윤식 시인 / 포르말린 조문
죽어도 자라나는 머리카락 같은 밤 부검의 감지 못한 눈동자는 조각 전언이 되고
지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냉정한 절개로 무언의 닫힌 문을 연다
주저흔이 남긴 덧없는 비문을 읽어내야 하는 검시대 위에서 분해되 는 벌거벗은 유서 삶에 섞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부끄러운 절규는 아 주 맑다
갇혀있던 내장들이 울컥울컥하고도 물컹한 향방으로 생전에 끌고 다니던 길들이 끌려 나온다
영안실 뒤쪽 떠나가는 뒷모습에 굳어버린 죽어서야 꽃 피울 수 있는 지금은 포르말린에 담긴 弔花가 싱싱할 때 2022년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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