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욱 시인 / 어머니의 달
매일 밤 안방에는 달하나 떠있다 달 속 강이 양수처럼 출렁이는 밤, 어머니는 방문을 잠그고 알몸의 엉덩이를 슬며시 달 위에 올려놓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달은 어느덧 만월 어머니는 환한 달빛을 에너지로 삶을 넉넉히 품어 오셨던 거다 어머니의 방안에서 달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오르고 기울고 하는 주기로 세상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고 밤낮이 무사히 제 자리로 찾아갈 수 있었음을 오늘 안방에서 졸졸졸 숨죽여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서야 안다 하늘에서도 누가 볼 일을 보는 것인가 그 위에 놓인 밤하늘의 엉덩이가 보일 것처럼 휘엉청 요강 하나 떴다 진한 어둠의 향기가 마당에 걸린다 새벽이 깰까 조용히 방문 여닫는 소리 어머니는 가득 찬 달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냇가로 향한다 조금씩 비울 때마다 달이 서산 아래로 졸 졸 졸, 기운다
월간 <스토리문학> 2007년 11월호 / 계간<시향> 2007 겨울호
추종욱 시인 / 개정판 수학용어사전
1. 루트
외삼촌은 정수리가 평평한 엄마 머리를 놀려댔다 수학 책을 펼칠 때마다 엄마를 루트라 생각했다 루트가 가진 수식들을 풀어 본다 엄마는 해발이 높은 둥지에서 자식들이 풀어내는 미지수도 다 감싸 주느라 루트의 생은 늘 제곱근 값으로 풀어지는 주름뿐이다 엄마는 새벽마다 神을 기다렸다 꼬인 수식의 내력을 기도로 풀어낸다 소원은 무리수지만 몸은 백일철야기도만큼 바쳤을 것이다
2. 확률의 성질
섬유공장이 망한 이후 아버지는 큰삼촌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돼지꿈을 꾸고 태어난 큰삼촌은 태몽부터 비상했고 쓴맛보다 단맛만 골라 쪽쪽 빨아먹는 확률의 성질을 가졌다 아버지는 신출귀몰한 빚쟁이를 피해 숲으로 도망쳐야 했고 느티나무 아래서 펼쳐 보인 것은 복권 당첨의 낮은 확률뿐이다 아버지와 엄마의 접선 암호는 아버지의 18번곡 <홍도야 울지 마라>였다
3. 교집합
옆집 사장과 누나는 교집합의 수식을 남보다 빨리 풀어낸 속도위반의 로망스였다 둘이 야반도주를 한 그해, 누나의 이름이 소문난 건 나쁜 년이었고 진짜 이름은 잊혀 갔다 딸을 찾으러 간 엄마는 울어 퉁퉁 분 누나를 가슴에 묻고 돌아 나오는데, 코훌쩍이 막내가 누나 등에 업혀 떨어지지 않았다 샴쌍둥이처럼 누나의 몸에 붙은 막내를 합집합이라 불렀다
4. 함수 관계
형은 풀빵 기술로 길거리를 평정한 1번가의 빵 장수로 이름을 날렸다 형의 유일한 적수는 불량배였다 풀빵답게 속이 뒤집히고 부글부글 끓으면 시커먼 손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댔다 28전 28승의 승률로 리어카를 지켰다 형은 불량배들과 적절한 함수 관계를 유지했다 엄마는 형이 사람 굽는 장수가 될까 두려워했지만 지금 풀어내는 형의 공식들은 1번가의 탈출에 있었다
-<문학.선> 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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