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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혜란 시인 / 남아 있는 기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4.

류혜란 시인 / 남아 있는 기쁨

 

한 조각 볕에 감싸여

낮잠 자는 검은 고양이

몇 번 째 봄 사는 걸까

배달부 스쿠터에 올라

맞은바람 즐기는 중국집 강아지

몇 번의 봄 살게 될까

그늘도 빛나는 벚꽃길

우리 서로 이름 부르니

품 속의 책 따뜻해지고

어스름 오도록 덧없이

먹고 놀다 헤어진 어떤 날 이후

이집 저집 마실 다니며

하나둘 생겨나는 좋은 기억

이 한 번의 봄 꽃비 내리듯

남아있는 기쁨

 

-시집 <남아있는 기쁨> 중에서

 

 


 

 

류혜란 시인 / 내일 눈을 뜨면 하늘나라이기를

 

나는 꿈꾸며 눈을 감았지만

아침에 눈 뜨며 여전히 아팠고

삶은 느릿느릿 끝없는 벼랑길을 깔았다

매일 매일이 거르지 않고 그러하여

더 이상 하늘나라 가기를 바라지 않고

여전히 아픈 아침에 우리 옆집 영이

여전히 가슴저민 영이와 우리 남쪽 엄마

여전히 응어리진 엄마와 우리 북쪽 이웃

여전히 상처 아물지 않는 이웃 생각으로

그냥 같이, 저미고, 응어리지기로, 아물지 않기로,

그냥 여전히 아프기로 마음 정하다보니

견딜만하게 아파지기 시작해,

사랑할 정신은 씻기어 또렷하다는 것이,

눈물 나도록 구원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아픈 아침에 나는 아프기 전보다

더 생생히 날아오를 듯하다, 하늘나라에는

이미 영이랑 엄마랑 이웃이랑 이렇게

날아올라 가고 있다, 치열히 가고 있는 동안은

이미 간 것이다, 하늘나라 정말 가게 해준

고마운 나의 아침, 여전히 아픈 아침

-시집 <여전히 아픈 아침>에서

 

 


 

류혜란 시인

1980년 서울에서 출생. 2010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시집으로 『고양이 무공』(발견, 2011) 『남아있는 기쁨』 『여전히 아픈 아침』이 있음. 현재 '발견'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