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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현종길 시인 / 연수사 서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4.

현종길 시인 / 연수사 서탑

 

 

밤낮으로 염불 외던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가고

빈 절 빈 탑에 달빛만 서성인다

 

서탑이 귀를 열고 내 발길을 몰아 세운다

달빛에 어린 탑 경전을 풀어 내 듯

연수사 뜰에는 연꽃들이 삼매경에 든다

 

청와석으로 굳어진 소금 같은 그 몸에서

할머니,어머니의 오랜 전설이 배어든 기도 소리

그 목소리 내 심장에 송곳처럼 꽂힌다

 

천 년 전 흰옷 입은 우리민족 모여 살던 서탑가

그 혼들 허공에서 잠들지 못하는데

모란각 평양각은 네온사인의 눈멀고 귀 멀어

서탑의 경전 읊는 소리 듣지 못한다

 

연수사 빈 문고리에 달그림자 달그락거리는 소리

반나체의 와불이 바람을 안고 누워 있다

와불의 몸에서 다라니경 읊는 소리 하늘을 가른다

 

흰 옷 입은 혼령을 내 품안에 받아 안고

나는 아득히 서탑 속 적멸에 든다

 

*중국 선양시에 있는 서탑

 

 


 

 

현종길 시인 / 봄의 음계

 

 

하늘에 파란 피가 흐르는 봄날

섬진강 팔백리 산수유 길을 걷는다

노랑날개가 돋아 나비처럼 날고 싶은 봄날

 

그 꿈을 펴듯

“봄의 소리” 왈츠를 추는 꽃잎들 따라

강물 출렁이는 낮은 음계의 선율처럼

물새들 은물결 일으켜 노를 젓는다

 

산수유 꽃잎 같은 음계들이

여린 음을 연주하는 그리움 하나

아지랑이인 듯 회오리바람인 듯

아른거리는 그 얼굴

 

꽃잎을 문 노랑나비 떼 연인같이 왈츠를 춘다

한낮 내 가슴 저쪽 너머에 그대를 두고

햇살 비친 유리구슬처럼 눈부신 나의 봄

 

 


 

현종길 시인

경기도 가평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문학과 졸업. 2013년 《문장 21》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한 알의 포도가 풀무를 돌린다』 『카르페 디엠』이 있음. 신사임당 전국 백일장 (장원). 제17회 김유정 기억하기 공모전 (우수상). 2018 춘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