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길 시인 / 연수사 서탑
밤낮으로 염불 외던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가고 빈 절 빈 탑에 달빛만 서성인다
서탑이 귀를 열고 내 발길을 몰아 세운다 달빛에 어린 탑 경전을 풀어 내 듯 연수사 뜰에는 연꽃들이 삼매경에 든다
청와석으로 굳어진 소금 같은 그 몸에서 할머니,어머니의 오랜 전설이 배어든 기도 소리 그 목소리 내 심장에 송곳처럼 꽂힌다
천 년 전 흰옷 입은 우리민족 모여 살던 서탑가 그 혼들 허공에서 잠들지 못하는데 모란각 평양각은 네온사인의 눈멀고 귀 멀어 서탑의 경전 읊는 소리 듣지 못한다
연수사 빈 문고리에 달그림자 달그락거리는 소리 반나체의 와불이 바람을 안고 누워 있다 와불의 몸에서 다라니경 읊는 소리 하늘을 가른다
흰 옷 입은 혼령을 내 품안에 받아 안고 나는 아득히 서탑 속 적멸에 든다
*중국 선양시에 있는 서탑
현종길 시인 / 봄의 음계
하늘에 파란 피가 흐르는 봄날 섬진강 팔백리 산수유 길을 걷는다 노랑날개가 돋아 나비처럼 날고 싶은 봄날
그 꿈을 펴듯 “봄의 소리” 왈츠를 추는 꽃잎들 따라 강물 출렁이는 낮은 음계의 선율처럼 물새들 은물결 일으켜 노를 젓는다
산수유 꽃잎 같은 음계들이 여린 음을 연주하는 그리움 하나 아지랑이인 듯 회오리바람인 듯 아른거리는 그 얼굴
꽃잎을 문 노랑나비 떼 연인같이 왈츠를 춘다 한낮 내 가슴 저쪽 너머에 그대를 두고 햇살 비친 유리구슬처럼 눈부신 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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