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시인 / 뿌리의 내부
의식과 잠 사이, 왼쪽 귀에서 들리던 소리가 하산 때 굽은 떡갈나무에서도 똑같이 흘러나왔다 열리고 닫히는 땅속의 비밀
뿌리 밑을 파고들어 간다 무게 잃은 마을의 여왕은 어디 가고, 땅벌들만이 창을 치켜들고, 뿌리를 찌르고 있다 해충제를 뿌리자 떼로 몰려와 발뒤꿈치를 사정없이 찌른다
삐걱대는 지붕, 그 아래 속한 것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재주가 있는지
업둥이로 들어와 스물여덟 해를 키운 그의 아들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떠돌다 자신과 아내를 해한 존속범죄 소식, 아들을 혼자 두고 매일 모래펄에 나가 피조개와 씨름한 손들의 죄,
모두가 밥그릇의 질서를 몰라 지반이 흔들리는 신호다
불을 켜고 뿌리 속에 숨겨진 삶을 털어낸다 떨어뜨린 악다구니와 비바람에 휘말린 웃음을 쓸어 한 자루씩 바깥에 쌓아둔다 뒤얽힌 몸에서 고성이 터질 때마다 지문 닳은 떡갈잎이 등을 토닥이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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