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요 시인 / 여우를 피하는 방법
한 고개를 넘어도 여우가 있네 두 고개를 넘어도 여우가 있네 놀이가 끝나지 않았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두려웠지 밤이면 누군가 성냥불을 그으며 속삭였어 도망가고 싶으면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렴 그래 더 깊은 곳으로 기어 들어갔지 꼬리를 자르고도 새로 돋을 목숨이 내겐 없었어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밤, 어둠속에서도 거추장스러운 줄기를 뻗어가는 늙은 감자가 되어갔어 쭈그리고 앉아 여우가 내게 찾아오길 기다렸어 잠잔다, 밥 먹는다, 무슨 반찬에 어느 순간 여우가 두렵지 않았어 거꾸로 된 문장들을 읽어 내리며 마지막 성냥을 그었어 발에 차이는 돌멩이들 거기가 어디냐구? 엄마의 지문이 묻어 있기도 할머니의 지린내가 배어있기도 한 돌무더기가 가득한 고개 말이야
김지요 시인 / 멈춰버린 심장처럼
폭설이 내렸습니다 검은 까마귀 떼가 설원을 날았죠 12월의 사라오름엔 흑과 백 두 가지 색만 남았어요
종아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눈 보다 당신의 침묵이 더 서늘했어요 결빙의 호수를 가로질러 간 선명한 발자국만 남았죠
압 안의 말은 더 이상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아요
당신에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어리석게도 마음을 가지려 한 적 있어요
호수를 삼킬 듯이 눈이 내리고 얼음심장으로 숨을 쉬는 호수와 함께 하얗게 지워져 가요
귀가 먹먹하게 내리는 눈발이 돌아갈 길을 숨겨 버린 지금
눈이 멀어 가요 나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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