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승강 시인 / 육중한 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8.

김승강 시인 / 육중한 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었다

내가 들어오고

뒤이어 누군가가 들어왔는데

먼저 도착한 이들과 함께 나도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열두 번째로 도착한 것이었다

이제 두 명만 더 오면 된다고 했다

우리를 양편으로 갈라놓은

긴 식탁 위로 음식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열세 번째로 도착한 이가 들어오고

바로 열네 번째로 도착한 이가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음식이 다 놓이고

문이 덜컹하고 육중하게 닫혔다

방은 관처럼 길었고

창은 감옥처럼 높았다

우리는 우선 차려진 음식부터 먹기로 했다

 

-시집 <회를 먹던 가족>에서

 

 


 

 

김승강 시인 / 장미의 기억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는 서로를 지나쳤다

 

그녀를 지나쳐 몇 걸음 뒤 나는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나를 지나쳐 몇 걸음 뒤 그녀가 나를 뒤돌아보았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만나 흔들렸다

 

장미 한 송이 길 위로 툭 떨어졌다

 

-시집 <회를 먹던 가족>에서

 

 


 

김승강 시인

195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청,장년기를 보내며 문학활동을 하였음,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 2003년 계간 <문학. 판>에 <작아지는 나날들>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편저로 「흑백다방」열림원 (2006), 《기타 치는 노인처럼》, 《어깨 위의 슬픔》, 《봄날의 라디오》가 있다. 현재 창원에서 번역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