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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현혜 시인 / 결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2.

고현혜 시인 / 결혼

 

 

당신과 같은 주소를 갖고 싶었습니다

기다림 밴 맑은 물

하얀 쌀을 씻으며

밤이면 내게 돌아올 당신을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왠지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당신과 같은 열쇠를 사용하면

닫힌 열쇠 구멍 속에 우리만의 천국을 이루고

지쳐버린 하루의 끝엔 둥근 당신의 팔 베고

그대 숨소리 들으며 잠들고 싶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보다 어렵고

두 외길이

한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통과 아픔이 따름을 알면서도

내 이 길을 선택함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고현혜 시인 / 중간지점 아이

-The Halfway Child

 

 

내 이름은 헤이리

H.A.L.E.Y

그러나 전 제 이름을

중간지점이라 부르죠.

 

한때 사랑을 해서

저를 낳은 엄마, 아빠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헤어져 살죠.

 

엄마, 아빠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반으로 나누었지만

 

살아 있는 저를 자를 수 없어

시간으로 저를 나누었어요.

 

이만큼은 네 시간

이만큼은 내 시간

그래서 그들은 일주에

한 번씩 그들이 사는 거리의

중간지점인 한 가스 스테이션에

저를 주거나 받거나 하지요

그리고 가스를 넣고

씁쓸히 웃으면서 헤어지죠.

바이

바이

그때 그들은 헤어지기 싫은

연인 같습니다.

 

나를 태운 아빠 차

가스 스테이션을 미끄러져 나오는데

아직 떠나지 못하고 머믓거리는

엄마의 차가 보입니다.

무엇을 찾는 듯하면서

눈물을 닦는 엄마의 손도...

갑자기 멀쩡하던 내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제 친구 샐리가 그랬습니다

"헤이리, 넌 좋겠다. 집도 둘,

엄마도 아빠도 똑같은 장난감도 둘"

나보다 한 살 어린 샐리는

아직 모릅니다.

정말 소중한 건 하나,

하나면 되는 것을...

 

아빠 차가 프리웨이에 들어서면서

전 제가 꼭 껴안고 자야하는

곰 인형을 엄마 집에 두고 온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입니다.

 

 


 

고현혜 (Tanya Ko) 시인

1964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93년 《한국시》로 등단. 바이올라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안티오크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석사. 시집으로 영한시집 『일점 오세』,  영시집 『Yellow Flowers on a Rainy Day』와 시집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가 있음. 영시 「Comfort Woman" Women's National Book Association」가 2015년 영예의 시 선정됨. 제1회 윤동주미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현재 미국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