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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상운 시인 / 눈물이 나에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1.

심상운 시인 / 눈물이 나에게

 

 

눈물 속에는 파란 하늘과 나지막한 산자락이 들어있고

 

눈물 속에는 백일홍 피는 마을의 뻐꾸기 소리가 들어있고

 

눈물 속에는 사춘기적 사랑이 수 놓여 있고

 

눈물 속에는 살 비비며 사는 것들의 뜨거운 속살이 담겨져 있어

 

이 세상 살아가다 길을 잃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맑은 눈물 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네.

 

-시집, <녹색전율> 시문학시인선 526

 

 


 

 

심상운 시인 /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심상운 시인

1943년 강원도 춘천 출생.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고향산천』, 『당신 또는 파란 풀잎』, 『녹색 전율』 등과 시론집『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가 있음. 사단법인 한국 현대 시인협회 회장 역임, 제20회 시문학상 수상. 제11회 정문문학상 수상. 전 중등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