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응 시인 / 즐거운 고려장 여보, 잉카 사람들처럼 바랑에 방울 달고 바람을 돌고 돌아 산굽이 오르내리다 보면 두 사람 누워 네 다리 뻗을 조그마한 땅뙈기 만나지 않겠어요 우리 외할머니의 시어머님은 아드님이 울며 지게 매고 산으로 데려 가셨대요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대요 어제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육십갑자 한 바퀴를 완주한 날, 당신과 난 먼 생을 걸어가야 돼요 아무도 뒤쫓아 오지 못하는 높은 곳으로 천지사방 쏘다니다 지치면 부둥켜안고 잠들자고요 두 몸뚱이 포개진 채로 천만년 풍화되어 바람으로 살아지더라도 우리 둘만 알아볼 수 있도록 껍데긴 여기 버려두고 알맹이로 떠나자고요 여보, 고대 잉카 사람들은 아이들을 낳고 기른 지붕 아래 두 개의 시간을 매달아두고 시계바늘이 포개지는 첫날 새벽길을 떠났대요 그림자 떼어놓고 울며 뒤돌아보지 않으려 웃으며 구름 위로 뛰어다녔대요 여보, 눈이 다 녹아가요 우리도 잉카 사람들처럼 돌아온 생은 아무데서나 먼지처럼 부려놓자고요 웹진 『시인광장』 2023년 2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종국시인 / 간절기 (0) | 2023.04.02 |
---|---|
이종섶 시인 / 눈물 외 2편 (0) | 2023.04.02 |
김이듬 시인 / 결별 외 1편 (0) | 2023.04.02 |
이태관 시인 / 단풍나무 외 3편 (0) | 2023.04.02 |
유희봉 시인 / 해바라기 외 2편 (0) | 202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