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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대호 시인 / 고양이와 구름으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4.

김대호 시인 / 고양이와 구름으로

 

나는 매일 갈라진다

서로 다른 말을 내뱉는 위턱과 아래턱으로

갈 길이 다른 무릎의 두 연골로

하지만 나는 질서정연하게 하루의

일과를 마칠 수 있다

저녁에 찾아오는 피곤은 견딜 만한

후렴이기에 불만이 없다

바람에 날리는 흰머리와 눈에서 나오는

주술은 서로 만날 수 없지만

주소가 같다

당신의 고민이 집을 포위한다

고민은 두 가지로 갈라져 있다

고민 하나가 옆으로 픽 쓰러지려고

하는 걸 반대편에 있는 고민이

받아서 다시 바로 세워 준다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식물의 감정을 보태지 않아도

하나의 생애는 동물적 생태와

맞물려서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법

그러나 내 주위는 식물과 식물성으로

갈라져 있다

취업이 안 된다고 고양이가 운다

오늘의 힘이 약화되면 지나온 날들을

죄다 편집해 버린다

나는 매일 갈라질 수 있다

식물성과 동물성으로

고양이와 구름으로

 

 


 

 

김대호 시인 / 당신을 설명하다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면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기에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낮과 밤을 설명해야 하고

너무 쉽고 너무 뻔해서 일부러 길을

우회하는 행로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추가하는 달콤한 디저트

설명의 의미를 눈치챘다 해도 우리는

멈출 수 없지

기도해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루한 기도를 멈추지 않듯이

당신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드라마의 결말과

식탁의 반찬과 신발 밑창이 바깥으로만

닳는 이유 따위를 오해했을 것이다

어디까지 설명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문득 노안이 와서 당신이 아득하게

보일 때도 내가 당신을

어디까지 설명하다가 말았는지 기억나지 않았어

저녁을 설명하다가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네

통곡을 한 것이 오래되었고

당신의 육성은 음을 이탈했으므로

중독은 설명할 수 없다

눈물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그러나 눈물에 중독된 슬픔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음식 프로그램과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 비겁과

폭우와 미필적 고의의 반성과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지 않는 비명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이력서

결과가 먼저 왔고

지루한풀이 과정만 매일 지속된다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고 싶을 때가 있지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설명이 예보하는 날씨들이다

 

 


 

 

김대호 시인 / 저녁 변검술

 

저녁이 왔을 때

단지 몇 분만 관람이 가능한 석양이 찾아왔다

일대를 금빛으로 도금한 착시 앞에서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죄와 회한을 고해야 한다

저 황금빛 변검술은 쇠락한

태양의 가문에만 전해지는 비법이라서

화려한 금광을 채굴해 바쳐도 배울 수 없다

석양 앞에선 모든 것이 공평해졌다

낮에 나를 괴롭힌 고약한 집착도

석양빛에 물드니 스르륵 녹았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지중해

연안이 금빛으로 춤을 춘다

석양의 찰나

찰나의 석양이여

죽은 자들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가장 숭고한 부위가

마지막으로 긴 띠를 이루며 길게 누웠다

죽은 자들의 안부란 생각보다 간단해서 발설하고 뭐하고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 단막극을 관람하려고 하루를 기다리고 일생을 서성이는가

곧바로 밤이 왔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에서

 

 


 

김대호 시인

1967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2012년 상반기 《시산맥》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걷는사람, 2020)이 있음. 2019년 천강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