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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윤미 시인 / 멜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2.

강윤미 시인 / 멜순*

 

 

길섶 가시덤불 속에서

용케도 멜순을 찾아내시는 어머니

 

재잘거리는 내 눈이 서운할까

마주치시는 것도 잊지 않고

말에 간간이 추임새을 넣어주면서도

그녀의 등허리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향해 있다

 

두 눈 부릅뜨고 그녀의 눈길을 따라가 보지만,

내 눈에는 엉킨 실타래같은

가시덩굴 뿐

 

선밀 나물은 나를 피해 요리조리 숨어 있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얼른 달려와 다소곳이 앉는다

그 부름으로 환해지는 산보길

멜순도 허겁지겁 봄을 불러와 꽃을 피운다

 

내 입에서 나오는 선밀 나물과 어머니의 멜순

길바닥에서 엉켜 뒹구는 그 말들을 모아

어머니는 버무리신다

데쳐도 향기는 손끝에 남고,

 

어머니 몸엔 멜순향 나는 파스가 숨어 있다

 

멜순* : 선밀나물의 제주도 방언

 

 


 

 

강윤미 시인 / 벽에 세 들어 사는 몽골 여자

 

 

간혹 외풍이 들기 좋은 방엔 나와

여자가 산다 벽에 기대면

창문의 크기만큼 환해지는 그녀의 목소리

매일 저녁, 내 고막을 걸어 나온 그녀는

구멍가게에서 낡아가는 이국의 언어를 사들고 온다

언어를 경계로 단 한 번도 이름 마주친 적 없지만

그녀와 나는 누구보다 가깝다 문득

길을 가다 사막에서나 쓰는 말이 들리면

옆방에 사는 여자일까

뒤돌아보지만 그녀는

내가 한 번도 걷지 못한 고비사막이 되어 사라진다

 

볕 좋은 날이면 마당에 거죽을 널어놓는 그녀

문틈으로 빠져나온 영혼을 건조대에 두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도둑조차

들어설 수 없을 것 같은 한갓짐이

벽을 타고 흥얼흥얼 흘러나온다

 

라디오 목청을 돋우면 어김없이

벽지의 꽃잎 속에서 들려오는 이국의 향기

언젠가 아껴놓은 메아리를 듣는 것처럼

음악 속에 세든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 주변을 서성인다

서성거리다 내 귓바퀴는 곧장 그녀에게로 달려간다

벽에 세 들어 사는 고비의 언어

 

기억 없는 기억을 들추는 사진처럼

그녀는 나를 설레게 한다.

잠 설치게 한다 모든 걸 털어놓아도

이미 알아서 모른다는 표정의 여자, 나를 닮아

나 같지 않은 몽골 여자

 

 


 

강윤미 시인

1980년 제주에서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2007년 광주일보 문학상 수상.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