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유자 시인 / 벌판의 꽃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5.

김유자 시인 / 벌판의 꽃나무

 

 

봄에는 너무 많은 꽃이 핀다

 

꽃피지 않을 테다 결심하는 나무

잎만 무성한 나무, 잎 떨구고 줄기만 자라는 나무

나무만 남아도 나무인 나무

그런 생각도 생각하지 않는 나무 앞에 나는 서있다

 

몸을 떠나 먼 곳에서도 바라보는 몸

 

빛의 채찍이 목련나무를

시간은 내 몸을 착취한다

 

잎 속에서 밀려나오는 나를 본다

 

붉은 얼굴의 나에게 어이, 꽃나무

이제 그만 가, 너 때문에 생각이 돋고 꽃 피려고 해

 

나는 그만

생각하지 않는 나무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벌판 한복판에 나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봄엔 밖이 집안보다 따듯하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김유자 시인

충북 충주 출생.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고백하는 몸들』 『너와 나만 모르는 우리의 세계』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