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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덕규 시인 / 낙하산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9.

박덕규 시인 / 낙하산

 

 

1

몇 포기 잡풀 붙잡고 그림같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지만

단 한 줄의 깜장 크레용으로 나는

지워지고, 그리고 다시 나타나 보일 때까지

박쥐처럼 숨어 지내기만 하였다.

한 걸음씩 봄밤은 짙어 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꽃이 피고

번져 갔다. 4월과 5월의

잠자는 병동 쪽으로

혈압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2

저지대에 살면서 불어댄 풍선,

 

바람 앞에 나서면 하늘로 치솟아 가던

우리의 횡경막은 얼마나 부풀까.

만유인력과 낙하 운동을 배우던 시절

측정할 수 없는 한계 밖의 공간에서부터

초가지붕 위로 아파트 옥상 위로

떨어뜨려진 돌멩이같이

가장 자유로운 곳이라던 무중력에서도

뻥뻥뻥

풍선에 구멍이 뚫려서

단 한 줄의 깜장 크레용으로 나는 지워지고

다시 하늘 끝을

어떤 색깔로 그려 놓을까.

우리의 꿈은

늘상 시계 밖으로 밀려나 있다가

어느 밤 낮은 체위로 누워 상상하면

절망인 채로

뉴턴의 사과열매만 자꾸 떨어졌다.

 

3

꽃들은 거꾸로 매달려서

 

시나브로 시나브로

시들어 갔다, 꽃들의 향기만 남기고.

마침내 그들의 향기마저 시들었을 때

나는 차라리

인력 이전의 곳으로 내리고 싶다.

 

 


 

 

박덕규 시인 / 꽃잎의 여자

 

 

작은 여자

목소리가 모기소리 같다

입도 모기 입 같다

 

기차는 벌판을 달리고

작은 여자

기차 소리에 묻혀 있다

 

작은 여자

차창에 묻은 빗방울 같다

 

꽃 이파리

조막손 몇 개

공중에 묻은 것 같다

 

온몸이 바람 되어

날아가는 것 같다

 

기차는 벌판을 달리고

작은 여자

 

바람에 날려서

생생해지는 것 같다

 

생생해서 그대로 벌판 같다

 

 


 

 

박덕규 시인 / 사이·2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나는 피했다

 

뒤축을 자갈밭에 묻고

시궁창에 코를 쳐박고

 

 


 

박덕규 시인

1958년 경북 안동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0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꿈꾸는 보초> 등.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2014.1 한국문예창작아카데미 회장. 1982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82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 입상. 1992 편운문학상 수상. 2001 제14회 경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2015.5 제30화 이상화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