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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종태 시인 / 피나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6. 1.

김종태 시인 / 피나물

 

 

티끌 하나 없이 고운 얼굴

손 까딱 건드리지 마세요

겉잡을수 없이 뚝 떨어진다오

선하니 널푸른 잎사귀

장난 삼아 뜯지 마세요

붉은 피 뚝뚝 떨어진다오

원색 빛깔 작은 몸 모진 꿈

제발 얕보지 마세요

오뉴월 서리 같은 독이 있다오

한 번 품은 마음 허틀어질까

무섭다 돌아서지 마세요

혼자만 눈물 뚝뚝뚝 흘린다오

 

 


 

 

김종태 시인 / 연서(戀書)

 

 

 마지막 식사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생오이 고추장 찍어 꾸역꾸역 밥 말아 먹었습니다 마지막 하룻밤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리차에 스틸녹스 씹으며 아득한 잠 청하였습니다 운 좋게 깨어난 아침이면 마지막 강의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목청껏 푸른 보드마커 잡았습니다 마지막 봉급일 줄 모른다는 생 각으로 우두커니 자동입출금기 앞에 서곤 하였습니다 마지막 눈물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남몰래 실 컷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詩)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는 한 줄의 시행(詩行)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

 

 


 

 

김종태 시인 / 우리의 동력이 용틀임하는 벌판

 

 

푸른 강물이 넓은 바다를 향해 내달리듯이

거센 바람이 높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듯이

1989 기사년 2월 초하루부터 2023 계묘년의 오늘까지

소용돌이치는 현대사 서른 네 성상, 변화와 변혁의 갈림길마다

하늘 사랑, 인간 사랑, 나라 사랑의 사시를 펼쳐 온 정론지

 

위와 아래, 어느 계층에도 휩쓸리지 않고

왼쪽과 오른쪽,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먼바다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의 균형 잡힌 날개를 지닌 듯

‘우리의 모습과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도하자’는

결기가 서린 창간 모토에 겨레의 가슴은 일렁거렸다

 

민족 시련의 흔적이 배어 있는 파란의 용산벌

이제 다시 미래를 헤쳐나갈 우리의 동력이 용틀임하는 벌판 위로

무지와 절망을 넘어서는 지혜와 소망의 시간을 지나

고통과 상처를 감싸주는 치유와 재생의 시간을 지나

질실강건(質實剛健)으로 쌓아올린 센트럴파크타워 신사옥은 오랜 세월의 숨결이다

 

해원과 평화와 자유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지구촌의 특파원과 통신원들, 그리고 이 땅의 기자들이 어우러져

미디어 빅뱅의 우주로 열린 영원한 생명들을 낳는다

오대양 육대주와 무궁화 강산이 하나가 된 거대한 네트워크를 좇아

포스트 디지털 세상의 슬기로운 웅비를 꿈꾼다

 

 


 

김종태 시인

1971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떠나온 것들의 밤길』 『오각의 방』이 있음. 청마문학연구상, 시와표현작품상, 문학의식작품상 수상. 현재 호서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