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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전 시인 / 하현달
재잘거리던 어린 별들도 고요히 돌아누워 잠이 들고 무리에서 떨어져 지친 날개 퍼덕이던 기러기 한 쌍 어둠은 어디에 두었는지 까칠한 눈빛의 그녀가 내려 보며 기웃거렸네 삼삼오오 걷고 있던 가로등, 제 불빛을 작은 공마냥 서로의 발 아래 던져주며 갓 버무려내는 이야기들 멀찌감치 물러나 홀린 듯 듣고 있었네 어제의 나 많이 닮은 듯한 출렁이는 저 등불 어느 새 두어 걸음 따라 나서고 있었네 불꽃 켜 든 저들, 표주박 같은 그녀를 어디로 느릿느릿 데려가고 있는가 바람도 잠든 그 곳으로 밤새 오르내리며 자주 귀 걸어두던 그녀 오동통한 볼살이 쑤욱 빠져버렸네 제몸 절반 비워버리고도 다시 채울 무엇이 있길래 저토록 담담한 표정일까 가끔 내 마음도 나를 쓰윽쓰윽 지워 버리고 새살 돋게 하고 싶을 때 있을 것이네
윤미전 시인 / 그 무렵, 雪夜
안 보다 더 환한 밖 내뿜는 입김으로 휘청! 가벼운 팝콘처럼 튕겨져 내리다 나풀거리며 몰려들어 움푹 패인 발자국들의 알리바이를 바삐 지우고 있다 한순간 길을 잃었나 강강수월래 돌 듯 빙글빙글 도는 저 꽃의 무리, 어지러워라 키가 한 뼘씩 웃자란 나무들에게 흰옷 한 벌 지어 입히는 그 손길만이 부산할 뿐이다 백목련 한 그루 거느린 내 마음을 사그락! 사그락! 수없이 두드리는 몰스부호 같은 그의 교신, 잎이 되고 꽃이 되어 눈부시게 피어난다 어디를 가려고 저 무수한 눈발들은 이 경유지를 택했을까 마음 밖으로 터져 나오려 발돋움하는 목련꽃 봉오리 더디 오는 봄을 어찌하려고
윤미전 시인 / 너를 보낸다 - 병술년(丙戌年)을 보내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뒤돌아 볼 새 없이 소나기 지나가듯 또 한해가 돌아앉을 때 발등 적시며 달려온 어제가 잊을 건 빨리 잊으라며 싱긋 미소 짓는다 팽팽한 보름달이 부풀어오른 제몸 어쩌지 못해 스스로를 비워내는 것처럼 삼백 예순 닷샛날 키워왔듯이 한해가 새옷 갈아입는 다른 한해에게 악수 청하며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등잔불이 온 힘 다해 마지막 불꽃 밀어올리며 장엄한 최후를 맞고 있다 자, 이제 떠나자 적멸을 지나 새벽이 천지사방 뻗어올 저곳으로 자, 이제 작별하자 지친 마음들 토닥이며 환하게 손 내미는 저곳으로 한 세월 휘돌아 문득 마주치면 색 바랜 사진처럼 서로 기억할 수 있을까
병술년, 너를 보낸다
윤미전 시인 / 새해 아침을 노래하다
보라, 새해 첫 아침을 순산하며 흐뭇한 미소로 등 두드리는 산허리 기댄 채 출렁이며 숨 고르고 있는 저 바다의 상기된 표정
새로이 열린 하늘이 햇살다발 펑펑 터뜨리며 천지사방으로 흩뿌려지고 한 살 나이 더한 새들도 무슨 생각에선지 날갯짓 하며 치솟는다
어둠 쓸어낸 새해 첫 햇살이 복덩이 같은 어린 것들 품고 있는 어미돼지 토실토실한 등가죽에 한 벌 온기를 덮어준다
숨 가쁘게 줄달음쳐 온 산맥들 일으켜 세워 삼백 예순 닷샛날 다시 행진하며 힘찬 발걸음들 모아보자
먼저 온 희망이 어서 오라 손짓하며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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