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강연우 시인 / 공일空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23.

강연우 시인 / 공일空日

 

 

뒤척이는 몸의 가장자리마다 나무의 피가 고이기 시작한다 타공음이 아침을 타공하는 아침이다 조각난 조각들이 잘 붙지 않는다 누군가와 나누었을 어제의 말들을 떠올려 찢어진 근육들을 재단한다 얼굴의 근육들은 그냥 두기로 한다 그곳은 모래전 내가 떠난 섬이다.

 

유서 같은 햇빛이 그림자를 내린다 시간을 들여 그림자에서 어제를 수습한다 어제는 내가 살아 보지 않은 오늘이다 안치된 어제로 몇 구의 시신들이 따라가 눕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둘 모두에게 혐의가 없다 나에게는 연보가 없다.

 

다단조의 냉장고 컴프레셔 진동이 울컥 바닥으로 쏟아진다 달력의 숫자들이 쏟아진 음역으로 투신하기 시작한다.

 

공일이 시작된다.

 

 


 

 

강연우 시인 / 자정으로 가는 희망곡

 

 

 1

 

 작은 마을에 나와 집집마다의 난간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난간을 타고 어김없이 떨어져 내리던 미래를 산산조각 난 미래들이 종종 찾아오는 봄의 몸뚱어리를 갈갈이 찢어 내고는 했습니다 음-

질량이 탈각된 마을이라 할까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잘릴 반의 여백을 둥둥 떠다니고는 했습니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왕왕 중력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발목에서 발가락이 자라 날 때쯤 다시 그들은 붕-붕- 허공으로 솟아 올랐지요 땅으로 내려앉기에는 몹시도 가벼운 주머니였습니다.

 

 2

 

 눈보라가 궁굴린 마들은 공중에서 망루가 되었습니다 망루가 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지상을 쏘아 보았지만 망루를 지나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불쾌해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정면만을 보며 걸었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역시 정면이 좋았던 것입니다 정면은 언제나 달콤한 맛이 나잖아요?

 

 아이들이 골목에서 시간의 단추를 잠그고 있습니다 바람 빠진 축구공이 다리를 절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군요 어느 미래에도 풀어 헤치지 못할 단추이겠습니다.

 

 3

 

 오들도 천 개의 날개가 달리고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방문했습니다 카메라와 마이크 도시락을 천 개의 손에 들고 말이지요 방문을 마친 그들은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지 마을 사람들과 다감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기근이 영광이 되는 순간이겠습니다.

 

 마을이 밤의 모가지에 걸려 어둠이 벌컥벌컥 달빛을 들이켜는 월 명기

 

 오늘 하루 안녕하셨는지요? 지금 여러분은 천 개의 귀 중 몇 번째 귀로 이 방송을 듣고 계신가요?

 

 이상 신길동에서 전해 드리는 자정으로 가는 희망곡이었습니다.

 

 자, 하나 둘 셋. 다시 자정

 

 0시입니다.

 

 


 

강연우 시인

2017년 계간 《시와 사상》 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