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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비 시인 / 자화상2
노고단 모질지않는 능선에서 품어둔 각시 투구꽃
간절히 기다리는 고개짓인가 청보라의 얼굴
백두대간 달려온 바람 나비떼가 가루비누처럼 날리는 사이
하늘을 받들고 왕관을 쓴 자태
우리가 별에서 만났는가 나의 물음은 고백보다 진지해서
하마터면 울뻔했다 몇 개의 색채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김루비 시인 / 가고 싶다, 길을 만나면
몸의 구멍은 길이다
줄지어 선 자작나무는 보헤미안의 음표다
신기루에 잠기다가 빛의 뒤꿈치를 돌아 알프스 오르다가 치마폭을 흔들다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함을 만나 마음조차 가벼워지고 싶다
흐르는 강물 소리에도, 겨울 가로수에게도 발걸음을 보여주는 길
길은 누군가에게 연주되는 기다리는 악기 같아서 내 안에 집시를 가둔 나는 가고 싶다, 길을 만나서 길이 되기 위해
김루비 시인 / 수련
주섬주섬 챙겨 넣은 호주머니 속에서
물의 주름살이 만져졌다
호수 위에 깔리는 물살은 그냥 두고
바닥의 진흙에 숨겨진 반란의 꿈이나 건져 올려 볼까
토우의 눈 속에 담아둔 기도가 뜨겁게 꽃으로 핀다
김루비 시인 / 비가 데려온 봄
용문사 홍매가 봄비를 피우고 말았네요
꽃이 나무를 피우는 가지 아래서 보았어요. 당신
발길 닿기 전
난분분 붉다 지친 꽃잎 바위에 동여 묶던 내 마음 곁에서 던져지고 있네요
김루비 시인 / 물박달나무 껍질을 읽다
이리저리 뒤엉킨 비탈의 자리에 가장 먼저 눈이 내린다 발라먹던 고등어의 살점 같은 몸 속 어딘가에 가시를 숨긴 것 같은 물박달나무 몸피 비워낼 때 파열음새떼의 깃털 아래서 눈은 은빛이다
애당초 너와 난너트와 볼트로 꽉 조인 몸 온전히 소리를 질러대기 위해 물박달나무의 허연 내장을 가른다. 너에게 이르는 길 한 가운데 내가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겹겹의 시간을 붙여놓은 포스트잇 때문이다
못 견디게 너덜거리는 껍데기가 등 가려운 산짐승의 모공을 긁어주자 떠돌고 떠도는 눈꽃은황홀한 건반으로 떨어지는 날갯짓이다
오래도록 구름을 빨아들인 키 큰 물관은 한 동이 물을 마신 뒤에도 목이 마르다 젖어도 자작거리며 자작자작 소리를 삼키며 눈은 내려서 터진 살갗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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