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임술랑 시인 / 아우라지강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27.

임술랑 시인 / 아우라지강

 

 

정 못살면 정선 가 살지

정선 가 뭐하노

아우라지강 강피리 잡으며 살지

뭉게구름 떠 머무는

加里旺山

 

그대 정 살기 어렵거든

아우라지강 강피리

유난히 순한 물맛에

한 生

아까운 한 생

살아보지 그래

 

 


 

 

임술랑 시인 / 동백꽃 지는 뒤뜰

 

 

한 점

그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끝까지 들어가 길어 올린 꽃송이

붉은 저 입술

바라만 보고 있다가

홀로

홀로

조용히 떨어뜨린 꽃잎들

고요히 떨어뜨린 꽃잎들

 

다가가 옷깃이라도 스치면

와르르 쏟아지는

 

 


 

 

임술랑 시인 / 고갱이

 

 

배추 고갱이 한 입에 씹어 삼키는 일 두렵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어떤 세상

송두리째 부서지는 것 같습니다

고소한 세상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나타나는 작은 세상

그의 소중한 얼입니다

 

배추 고갱이를 한 입에 우겨 넣기는 참말 두렵습니다

 

-시집 『상 지키기』(모아드림, 2006)에서

 

 


 

 

임술랑 시인 / 메리야스를 갈아입으며

 

 

메리야스를 벗으며

그 綿에서 풍기는 나의 香을

맡는다

내 몸과 가족을 위해서

흘린 땀 냄새를 맡는다

다시

새 메리야스를 꺼내 입으며

깨끗하게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할 생각이

잠시 솟는다

그 綿의 香에서

목화송이처럼 따뜻하게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임술랑 시인 / 노을

 

 

당신 몸 위에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 같아서

그대의 손목

핏줄 위를 기어갈 때는 팔딱팔딱 고동치는 것만 같아서

(한 생각으론 전체를 알 수 없으니)

그러다 당신이 근지러워

몸 흔들면 떨어져

그대를 쫓아오는 어떤 발걸음에 밟히고,

툭 터진 그 짠한 핏빛을 어디 칠하리

노을 같이 부푼 내 燈

 

 


 

 

임술랑 시인 / 맛있는 무와 맛없는 무

 

 

배가 고파

혼자 쓸쓸한 식사를 한다

밥 한 그릇

깍두기 한 통

이 깍두기

착한 무인가

밥 한 술에 깍두기 한 입

씹으면 씹을수록 사각사각 맛있는 무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쓸쓸한 식사가 일찍 끝난다

 

마음 아파

혼자 탁주 한 사발 한다

탁주 한 통에

깍두기 한 접시

이 깍두기

나쁜 무인가

씹어도 씹어도 이 맛도 저 맛도 없다

고춧가루 범벅에

마늘 생강 젓갈 다 들어갔어도

도통 물내만 난다

쓸쓸한 저녁이여

탁배기 한 통만 다 비운다

 

 


 

 

임술랑 시인 / 무언가 하나 더 부족 합니다

 

 

물고기는 발이 없어 물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소, 돼지는 손이 없어 아픔보다 더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합니다

내 몸뚱이에 달린 발과 손으로

이 블랙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무언가 하나 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임술랑 시인

1959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 <매일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3년 계간《불교문예》 시부문 신인상 당선. 시집 『상 지키기』 『있을 뿐이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민족작가회 상임시인.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