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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시인 / 개망초꽃
용문사 가는 길에 야인들의 묵언수행 같은 지천을 밝히는 작은 생명들이 있었다
이 땅의 어둔 곳을 가리고 노동의 새참 같은 프라이 계란꽃들이 속살을 보시하고 있었다
화려한 국화꽃 관심 밖에서 가녀린 몸을 일제히 던져 민초들의 하얀 눈물을 대변하고 있었다
-계간 리토피아 2012. 겨울호(통권48호)
박정규 시인 / 내 고향 남해
할머니 얼굴 주름살 골을 타고 달려온 버스가 마중 나온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싸-한 바다냄새 비늘처럼 일어나 차창을 두드린다 산허리까지 올라선 다랑이들 가슴에 노니는 물안개가 도솔천 대문을 지키고 있다 파릇파릇 마늘 농심 꿈으로 키우는 동면 잊은 다랑이들 대장군 여장군 우뚝 서있는 남해대교 두 팔 뻗어 반기고 방파제 깨우는 파도 거품 위를 비상하는 갈매기들 통통 고깃배 넘나드는 해전포구 노량바다 거북선 지킴이 세속에 발 담지 않은 처녀 허벅살처럼 뽀송뽀송 싱싱한 횟집 아줌니 꼴뚜기 병어회에 묻어나는 인심 망운산골짝 깬 청옥 같은 물줄기 뿌리 이어 내려오는 맑디맑은 내 고향 할아버지께서 토담 치고 옹기 모아 둥지 튼 보금자리 할머니 쌈지 속에 콧물 묻은 지폐처럼 밟아버린 세월 저편 아련한 추억들 삶의 주머니에 꼬깃꼬깃 숨었다가 겁 없는 망아지처럼 버스 안으로 뛰어든다 버스는 꼬불꼬불 시간 속을 달리건만 차창 밖 어린 세월은 새치만큼씩 마음 안을 키운다 아, 언제나 안기고픈 비릿한 흙냄새 마늘향기 토끼반도 남쪽 바다 한려공원 중심에서 청정해역 출렁이는 내 고향 남해
-첫시집 <탈춤 추는 사람들> 중에서 재수록.
박정규 시인 / 걷이
어수룩한 길을 수십 년 돌아와서 귀밑머리 하얗게 색이 바래 산밭 언덕에 메뚜기처럼 앉아 땀을 식힌다.
고왔던 짝과 가을을 캐러 온 밭에는 푸른 오솔길에서 함께하던 청춘이 있고 어머니가 불러주던 사랑이 이랑마다 스며있다.
마음에서 불러지지 못한 구름은 하늘에 있고 마음속에 붙여진 가을이 들판에서 제 몫 다한 듯 벌거벗어 가는구나.
-웹진 『시인광장』 2024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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