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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옥종 시인 / 잡채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31.

김옥종 시인 / 잡채

 

 

당면이 입원했을 때 병명은

전분의 과부하로 생긴

분리 불안증이었다

 

시금치나

당근이나

혹여

외롭다든가

쓸쓸하다든가를 넣어 센 불에

볶았다

 

추적추적

메타세콰이어 길이 어둠 속에

바스락거릴 때

 

죽음에 이르는 병을 덖어주었다

 

그것이 온 세상의 것을

위무해주지 않았던가?

 

시가 그렇고

절망이 그렇고

다시 불러보는

까닭 모를 외로움이 그러했다

 

몸을 빨래처럼 뒤틀어

채 털어내지 못한 계절까지 뒤집어

햇볕에 말렸다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던 말년의

건선 같은 옹졸함도

딱정이 지어 떨어지고

 

그렇게 나는 완경(完經)에

다다를 수 있었다

 

 


 

 

김옥종 시인 / 홍어의 숫기

 

 

한때는

세 발의 기럭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운데 빼고 두 발을 잘리는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저의 고향은 흑산도입니다마는

품절의 아류를 많이 만들기도

했습니다

산천을 두고

칠레가 고향인 듯했고

심지어는 아프리카 쪽이 고향인

친구가

제 집에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바람둥이라는 소문도

무성하지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손암 선생께서 제가 교미할 때

가시를 박고 하는 것을 보고

'암놈은 식탐으로 망하고

숫놈은 색욕 때문에 죽었으니

색욕을 탐하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라고 말하지만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성숙기에는 헛눈질을 하지

않습니다

 

저를 숙성시키는 힘은 항아리의

잔잔한 덖음

짚벼늘의

소소한 포옹으로 익어가는

저는 청순한 사내 새끼였어요

 

-시집 <잡채> (휴먼앤북스, 2022),

 

 


 

 

김옥종 시인 / 고추냉이

음식을 연애하듯 만들었다

​​

보듬어서 좋았던 한 시절이 가고

서로의 체온에서 수맥을 느낄 때

토마토 주스를 갈아 마셨다

부추를 먹고

생굴을 먹고

영양제를 먹었다

​​

환절기에 겹친 갱년기에는

연애를 음식 만들 듯 했다

​​

차가운 곳에서 태어났으니 가장 뜨겁게 살아온

당신의 살 안쪽 인계선을 칼등으로 두드려

흘러내린 향기를

강판에 갈아

모두제비썰기해둔 인연을

간장에 적셔 먹었다

*모두제비썰기: 잔 칼집을 많이 내서 약간 크게 썰어 먹는 방법

 

 


 

 

김옥종 시인 / 난희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등 돌린 당신의

폐에서

순록 떼의 마른 발자국

소리 들립니다

옮겨 버리면 얼른 낫는다고 해서

입술로 덮습니다

차갑게 사랑하고

뜨겁게 헤어지고픈

그런 밤이었습니다

 

 


 

 

김옥종 시인 / 복섬

 

 

시래기 쫄복국의 가사리 고명처럼

내 오늘 끈적끈적 허니 물밑에서부터

엉키다가 더욱 부적절해지리라

속을 보듬고 냉기를 돌려보내면

온전히 벗은 몸으로 부끄러워하리라

만족시키지 못한 혀끝에 누워

내성을 가진 척 버텨 보아도

너의 치명적인 것은

독이 아니라 애정이었으니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2020.

 

 


 

 

김옥종 시인 / 명태 대그빡 전

 

 

울 큰 엄니 사리 물때에

눈이 가슴팍 까지 차오르던 날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꿩전을 부치셨다

생이 몇 바퀴 돌고서야 꼬순내 나던 꿩전이

명태 대그빡으로 만든 것임을 알았다

하릴없이 유년의 뒷그림자

녹슨 칼로 닦아내고

비계의 육즙 옆에 얼큰하게 드러눕던 밤

울 큰 엄니 꼬부랑 할매 되어

돌고 돌아오던 길가에서

기억을 꼬집고 가차이 서있는 보름달 아래에

콩대 타는 소리 튀어 오르고

휘어진 냉길 눈물샘으로 불어내며

명태 대그빡 대신 꿩 살을 다져 전을 부친다

대실 잔등에서 북서풍의 설향이 물안개처럼 흩날리고,

냉골인 구들장을 뎁혀 눅눅해진 시절을

올 곱게 하고 싶은 날에

버스 끊긴 정류장 앞은 달이 차고 넘쳐

새벽으로 번진 은하수 길 따라

명태 자리 별의 대그빡을 조사서

전을 부친다

 

 


 

김옥종 시인

1969년 전남 신안 지도에서 출생. 2015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민어의 노래』 『잡채』 출간. 한국인 최초 k-1 이종격투기 선수. 현재 광주에서 전업 요리사로 활동 중.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