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상백 시인 / 마하수리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1.

김상백 시인 / 마하수리

 

 

자물쇠 어둠 속

세상을 여는 열쇠 끝이 부러졌다

 

잠겨버린 세상

손목에 귀를 댄다

 

푸른 맥박 사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회청색 작업복

한쪽 다리를 끌고

굽은 소나무처럼

들어가는 수리공

용접 불꽃 튀는 새벽하늘

날개가 금속으로 빛난다

벌겋게 단 쇠와 새를 이어 붙이자

부러진 열쇠는 철새 되어 날아간다

 

자유에 묶인 자유가 풀어나고

희망에 사로잡힌 희망이 사라진다

새벽 열쇠 구멍을 빠져나와

온몸에 솔꽃가루 뒤집어쓰고

 

목에 두른 흰 수건이 아침 햇살 날개처럼 돋아난다.

 

 


 

 

김상백 시인 / 빗속을 열다

 

 

천형天刑 같은 병病이다

천수天水 빗속

똥 못 누고 쩔쩔 매는

 

장대비 낮짝에

물컵 쏟아 붓는다

 

천수관음

천개 손도

한 손에는 한 가지 일

 

어지러운 빗줄기

제자리에 떨어진다

 

 


 

 

김상백 시인 / 예후豫後

-김점용 시인을 기리며

 

 

수천 마리 떼까마귀가 전깃줄에 앉았다

 

세상이 정전되었다

 

촛불을 켜고 기도했지만

 

수술대 위로 오염된 눈이 내렸다

 

모빌에 부는 바람처럼 죽음이 다가서도

 

수인手印은 풀지 않았다

 

한 알의 시간조차 모두 빠져나간 모래시계

 

심장 한가운데 오로라를 품고

 

나머지 겨울은 흑주黑晝*로 보냈다

 

*겨울 석 달간 계속되는 밤의 아침

 

 


 

 

김상백 시인 / 정원사 새

 

 

베스트 오브 베스트

네 평생 물어 나른 것

 

큐브 30

 

유리 조각

풍뎅이 껍질

녹슨 못

단추알

옷핀

조개껍데기

플라스틱 병뚜껑

철사줄

노랑풍선

 

빨간 열매의 사랑

파란색 빨대처럼

빨래집게 그리고

 

깨진 시간

그 그릇에

깃털 꽂은

 

 


 

 

김상백 시인 / 입전수수入廛垂手

 

 

무당벌레 한마리

 

기어코 꼭대기에

 

비로자나 정수리

 

날개 활짝 펴고서

 

화엄전 중문 거쳐

 

숲속으로 날아간다

 

-시집 <한 줄로 된 깨갈음>에서

 

 


 

 

김상백 시인 / 잿더미 속에서

 

 

칼 가는 마른장작

 

장작개비에 찔려

 

죽은놈이 불이다

 

 


 

김상백 시인

1961년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졸업. 2014년 《문예바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시집 『한 줄로 된 깨달음』 『방이 생겼다』. 저서 『행복을 좇아가지 마라』 『극락도 불태워 버려라』 『법성게 강해』 『은그릇에 흰 눈을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