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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백근화 시인 / 아바타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1.

백근화 시인 / 아바타

 

 

이천 설봉공원 남자 화장실 입구에 한 여인이 쭈그리고 앉아 사내아이의 바지 단추를 끌러주며 차분하게 타이르고 있다

 

(나는 남자 화장실 입구에 버티고 있는 여인이 겸연쩍어 눈치를 살피다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못 들어가는 곳이야 아빠가 없으니까 너 혼자 해야 해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천천히 걱정하지 마 엄마가 여기 있을 거니까 자, 들어가 엄마 소리 들리니? 거기 하얀색 소변기 있지? 엄마 하얀색은 없어 소변기가 없다구? 빨간색만 있어 빨간색? 그래 그럼 빨간색 소변기 앞에 빤드시 서봐 전에 아빠랑 해본 적 있잖아 바짝 붙어 서서 바지를 내려 바닥에 닿지 않게 조심해서 팬티도 내려야지 손가락으로 꼬추를 똑바로 잡고 꼬추에 힘을 줘

 

(먼저 소변기 앞에 자리를 잡고 서 있던 나도 얼떨결에 손가락으로 그것을 똑바로 잡고 그것에 힘을 준다)

 

바닥에 흘리면 안돼 자, 이제 쉬 쉬이 쉬이이 변기에 대고 바깥으로 튀지 않게 쉬 쉬이 쉬이이

 

(나도 여인의 구령에 맞춰 고여있던 안의 것을 내보낸다 쉬 쉬이 쉬이이)

 

엄마, 변기에 파리가 앉아있어 파리가? 쫓아버려 파리 그림이야 파리 그림? 누가 거기다 파리를 그려놨대니? 엄마, 파리를 오줌으로 맞히고 있어 파리가 오줌으로 목욕을 했어 내 꼬추가 샤워기 같애

 

(나도 파리를 맞힌다 내 오줌에 샤워한 파리가 오줌 줄기에서 벗어나려 날갯짓을 한다)

 

엄마 다 쌌어 그래? 잘했어 손가락으로 꼬추를 잡고 오줌을 털어 열 번 세면서 털어 알았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서 뻔 여서 뻔 일고 뻔 여덜 뻔 아호 뻔 열 뻔

 

(나도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잡고 속으로 숫자를 세며 오줌을 정확히 열 번 턴다 그것이 정확히 열 번 덜렁거린다)

 

엄마 다 털었어 근데 손가락이랑 옷에 오줌이 묻었어 으 드러워

 

(나는 일부러 손가락이랑 옷에 오줌이 묻게 하려고 그것을 덜렁덜렁 과장되게 더 털어댄다)

 

괜찮아 바지 올리고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어 엄마 비누가 없어 그냥 씻어두 돼 다 씻었으면 손 털고 나와

 

(나도 비누 없이 손을 씻고 손을 털고 아이를 따라 밖으로 나간다)

 

기)아이는 자신의 손을 여인의 손에 도킹한다 이제 아이는 유선 모드로 조종된다(기)

 

(나는 여인에게 거치된 아이가 충전 램프를 깜빡이며 이동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서서히 방전된다)

 

 


 

 

백근화 시인 / 봄 전립선약을 처방 받다

 

 

 아궁이에 불을 넣다가, 굵은 장작 하나를 더 넣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장작을 팰 때 턱 밑까지 찼던 숨을 생각하다가, 얼마 안 가 떨어질 삶의 불쏘시개들을 걱정하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데, 꽃이, 매화가, 가지치기도 마치지 못한 매실나무의 꽃이, 점묘법으로 하늘을 나는데, 꽃잎을 프로펠러 삼아 떠다니다가, 수천수만의 만개(滿開)가, 한날한시에 몽롱한 내음을 뿜어대는데, 카메라가 나를 노리고, 둘러싼 레일 위를 달려가는데, 눈을 감고야 마는데, 팔을 벌리고야 마는데, 허파 가득 향을 들여 머금고 숨을 멈추고야 마는데, 다시 돌아보니 아궁이의 불이 역류하는 것이다 몇 개 안 남은 장작을 집어삼키고 벽을 타고 기둥을 타고 보를 타고 서까래까지 삼키는 것이다 타오르는 것이다 지붕이, 집이 타오르는 것이다 아직도 한참을 더 꽃피워야 하는데, 철쭉은 아직도 멀었는데, 조금만 견디면 유채도 찔레도, 어쩌면 쑥부쟁이도 코스모스도 피울 수 있는데, 피울 수 있는데, 피울 수 있는데, 잿더미 속 그을린 숟가락 하나 힘겹게 집어 드는 것이다

 

 


 

 

백근화 시인 / 곡비화哭婢花

 

 

아랫집 우산아짐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나

아직 이불 속에서

마누라 품에 코 묻고 쌔근거리는 시간에

아무리 울타리 뭉개고 이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해도

어떻게,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나

고쟁이 바람에 지팡막대 휘적이시며

발자국 꾹꾹 찍어 쳐들어오셔서는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이제사

다른 사람 통해 알게 되었노라고

원망을 늘어놓으시며

 

소식 듣고 올라감서 월매나 애통해쓰까이

소식 듣고 올라감서 월매나 애통해쓰까이

보내드리고 나믄 맨 못 해 준 것만 생각나네이

보내드리고 나믄 맨 못 해 준 것만 생각나아

 

시집오기 전 우산마을 사실 적

당신 어매 보내던 그리움에 목메시더니

 

월매나 애통해쓰까이

월매나 애통해쓰까이이

 

대성통곡을 하시는데

나는 죽은 우리 엄마도 우리 엄마지만

노무 어매 죽음을 두고

재 어매 죽음인 듯 곡하는 아짐

마음속 꽃이 너무도 곱고도 고마워서

아침참 내내 아짐 따라 눈물을 찍어내고 또 찍어내고

찍어내고 또 찍어내다가

가슴 속 꽃 한 송이

따라 피웠던 것이다

 

 


 

 

백근화 시인 / 민주주의를 위해 헌혈을 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청자를 보루째 사던 해병대 아저씨 구멍가게가 생각나요

팔팔 라이트를 가방에 숨기고 청자에 불을 붙였었죠

모판 옆에서 청자 연기 가득한 입으로 브나로드 브나로드

 

좋으시겠어요 우리 아인 겨우 인 서울 했거든요

무리해서 특목 보낸 게 그나마 주효했죠

상아탑은 무슨 총장 고공 농성하는 소리래요

남들이 가는 길로 안전빵 하는 게 개성 넘치는 일이에요

짐승들이 새끼 품고 있는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요

 

우린 초창기 멤버라 고생 좀 했어요

애들 경쟁시켜 가며 이기적으로 키울 순 없는 거니까요

육아할 땐 내 애를 내 애처럼 생각하고

공동체를 할 땐 남의 애를 남의 애처럼 생각하는 게 미덕이죠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돈 좀 썼어요

 

그래도 우리 땐 대의가 있었어요 대의, 대의 아시잖아요

어제도 친구랑 골프 치며 캐디에게 대의 얘길 한참 했어요

우리 세댄 출세보다 희생이었잖아요

캐디들은 왜 희생을 모를까요

가끔은 우리 세대가 이스라엘 민족 같다는 생각을 해요

 

아파트를 샀더니 아파트 주인이 되었어요

인형을 사면 인형의 주인이 되고

초콜릿을 사면 초콜릿의 주인이 되는 것처럼요

그럴 수 있는 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

인신매매 같은 건 하지 않는다구요

 

일상은 건드리지 않는 게 매너죠

잉여나 여력이라는 말 좋잖아요

아웃도어 갖춰 입고 미술관에 갔다가

산책 삼아 광장에 나가는 것처럼요

 

그래도 우리는 민주 천국 불신 적폐

늘 차악을 뽑기 위해 헌신한다구요

먼저 구라 친 건 쟤네들이니까요

라이프와 저스티스를 혼동하지는 마시구요 설마

배를 갈라 피라도 한 말쯤 흘려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구오철 씨는 아침에 일어나 어제 입금된 급여명세를 확인하고

퇴근길에 마침 회사 정문 앞에 정차해 있던 헌혈 버스에 오른다

 

 


 

 

백근화 시인 / 족발 프랜차이즈

 

 

 구제역 파동으로 매몰된 돼지들이 지하로 파고 들어가 돼지들의 나라를 세웠대

 

 요즘 돼지들의 나라에서는 인간의 발을 쌓아 놓고 파는 족발 프랜차이즈 사업이 인기래 족발들은 영혼의 힘줄을 완전히 제거해 놓지 않아서 거북 대가리 같은 발가락들을 계속 꼼지락거리고 있대

 

 처음엔 특공대를 파견해서 걸어 다니는 인간들의 발을 지하로 잡아당겨 납치해서 요리하곤 했대 이른바 자연산이지 그런데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중엔 족발용 인간을 집중해서 양식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대

 

 수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돔구장 모양의 전천후 사육장을 지어놓고, 발만 에스키모 부츠처럼 부풀리는 기계 장치를 갖춰 놓았대 발바닥에 수액을 꽂아 집중적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발을 잘라낸 자리에 다시 발이 돋아나게 하는 유전자 조작 기술도 개발했대

 

 발을 자를 때 마취를 하면 족발의 탱글탱글함이 없어진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마취 없이 쌩으로 발을 커팅 하는 법이 돼지 의회를 통과했는데, 그 때문에 인간보호연대에서 활동하는 돼지들이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몰려가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는 거야

 

 식사를 하러 온 돼지들이 쌓인 족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초이스 하면 주방장 돼지가 즉석에서 살코기를 발라 접시에 담아주는데, 발톱은 바삭하게 튀겨서 함께 내주지만, 새우젓 소스나 상추가 필요하면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대 그리고 접시 맨 앞에 발가락 다섯 개를 플레이팅 해주는데, 입에 넣으면 산낙지처럼 꿈틀거리는 식감이 미각을 자극해서 서로 먹으려고 싸운다는 거야

 

 참고로 크기는 작아도 부드러운 여성 족발이 조금 더 비싸게 팔린다는군 함께 담아주는 정강이뼈는 포장해 가서 돼지들이 키우는 애완견들에게 던져주면 환장을 한대

 

 실제로 먹어 본 돼지들에 의하면 와인이나 막걸리보다는 소주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해

 

 다음 달부터는 전자레인지에 3분만 데우면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음식으로 만들어져서 편의점에도 입점이 된다니 더욱 생활 밀착형 먹거리가 되겠군, 어때 기대되지?

 

 


 

 

백근화 시인 / 오감도五感度 시 제1호

 

 

13인의아이가길을가오.

(길은막혀있는것이좋겠소.)

제1의아이의엄마가시크릿노트를들고앞장서달리오.

제1의아이가엄마를따라빨리달리오.

제2의아이의엄마가제1의아이엄마의시크릿노트를노리고전속력으로달리오.

제2의아이가제1의아이를앞지르려전속력으로달리오.

제3의아이의엄마도제1의아이엄마의시크릿노트를노리고전속력으로달리오.

제3의아이도제1의아이를앞지르려전속력으로달리오.

엄마가없는제4의아이는혼자걷소.

제5의아이는등록금을대출받아걷소.

제6의아이는편의점알바를하며걷소.

제7의아이는유효기간지난삼각김밥을먹으며걷소.

제8의아이는고시원월세를밀리고걷소.

제9의아이는업비트와영웅문계좌를개설하고걷소

제10의아이는배달라이더를하며거꾸로달리오.

제11의아이는연애를포기하고기어가오.

제12의아이는결혼을혐오하며쓰러지오.

제13의아이는컨테이너에깔려죽소.

13인의아이는달리는아이와달릴수없는아이와그렇게만모이었소.(다른사정은있을수가없었소)

그중에1인의아이가달리는아이라면혼자달리면되오.

그중에2인의아이가달리는아이라면경쟁하며달리면되오.

그중에2인의아이가달릴수없는아이라면그건그들의사정이오.

그중에1인의아이가달릴수없는아이라면우리가그것까지걱정할일은아니오.

(길이뚫려있다손쳐도달라질건없소.)

13인의아이가함께길을달려갈일은절대로없소.

 

 


 

백근화 시인

서울에서 출생.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1년《시와 경계》신인우수작품상에 시 「봄 전립선약을 처방 받다」 외 3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