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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시인 / 성탄절
과거에서 소녀들이 <문학의 밤>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아버지는 동쪽 하늘 귀퉁이를 걷어다 구상나무에 걸쳐 놓고 새벽 송 무리들이 초저녁에 깔깔거리고 양말 한 쪽이 비는 밤이었다. 굴뚝 없는 집 아이는 선물이 없었다. 삼촌처럼, 이교도들이 전야제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집집마다엔 숨겨 놓은 메아리들이 많았다. 메아리를 대답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친절한 대답이라곤 메아리밖에 없었다. 눈꽃이 지천으로 피어났고 쌓이고 쉽게 녹곤 하였다. 상점 진열대엔 우주복들이 할인에 들어가고 나는 우주인이 되고 싶어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성탄절엔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카드를 읽었다. 몇 백 년 동안 이 변두리에서는 단 한명의 성자도 태어나지 않았다 동네는 작았지만 동네 오빠는 많았던 동네는 커다란 엄마 같았다 아무리 들떠도 나는 둥둥 떠오르지 않았다 성탄절은 동그랗게 둘러앉기 좋은 밤이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찬송가들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듣던 밤이었다.
-「다층」2016년 겨울호
박은석 시인 / 며칠, 이상한 직업
몇 개의 사각을 모아 놓으면 집 한 채가 된다는 사실 넓은 사각의 양쪽을 구부리면 지붕이 된다는 사실 몇 켤레의 신발과 부르는 소리를 모아 놓고 대답하는 사이는 문이 된다는 사실 이 집은 사각 하나가 더 숨어 있죠. 아마도 사각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미지의 방 하나가 있겠죠. 고래를 숨겨놓거나 아직 얼굴이 없는 아미를 숨겨놓기 좋은 곳이죠. 다정한 이름이 생기죠. 사람들이 찾는 것은 정교한 사각이지만 둥근 관계들로 세 들고 싶다는 것 몇 개의 숫자를 빌려 현관을 갖는다는 것 나선형 햇살이 드는 채광창을 갖고 싶다는 것. 가늘고 부드러운 음식냄새들을 오래 앉혀놓고 싶은 식탁을 갖고 싶다는 것.
세상에는 사각을 중개하는 이상한 며칠의 직업이 있었다. 마음을 가늠해서 가로 세로를 맞추고 멈춰 있던 네모를둥글게 만든다. 사각의 면에다 월세를 표시하고 먼 별을 입주시킨다. 세상의 월세들은 늘 비싸고 삐걱거리는 중개료를 받는다. 많은 사각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단지 비스듬히 기운 몇 개의 사각만 갖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 튼튼하고 넓은 사각을 중개 받고 싶다는 사실. -『다층』 2015.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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