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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정섭 시인 / 어느 날 경經을 듣다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3.

이정섭 시인 / 어느 날 경經을 듣다

 

 

노래하는 건지 바람 부르는 건지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로

경읊는 건지 경이 되는 건지

하늘을 밀며 끌며 부부가 간다

반나절 씨름하며 올라왔음직한 성남동 날망

온 생애를 부려온 듯한 리어카를 세우고

땀으로 얼굴을 씻어내는 부부

날망 아래부터 힘들게 따라온 어스름이

육교 부근까지 노을 끌어 모으면

목쉰 확성기를 환하게 펼친다

파 마늘 부추 시금치 열무

천천히 시들어 더욱 빛나는 깨달음들

귀담아 드는 이 흥정하는 이 드문

육교 밑, 따뜻한 법어를 흩뿌린다

들숨 날숨 힘겨운 고갯길

담지 못해 흩어지는 법어 사이로

서역 어딘가 행장 꾸린 노승이

비탈산 넘어 어둑어둑 걸어오는 중이다

 

 


 

이정섭 시인

1970년 대전에서 출생. 2005년 《문학마당》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충남작가회의 사무국장. 2006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시집 <유령들> <유령들의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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