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백기완 시인 / 젊은이여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4.

백기완 시인 / 젊은이여

 

 

나는 어려서 이른 아침부터 남들은 학교가느라

바쁜 밝은 새 아침이 그렇게도 싫었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는 나는 트릿한 날, 눈보라라도

몰아치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높은 나무일수록 거센 바람을 먹거리로

삼고 자란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젊어서 곧게 난 들길을 혼자 걷기를

그리 좋아했다 거기서 남들이 낸 들길은 끝이

있다는 것을 보고, 따라서 내가 가야 할 길은

내가 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젊은이여, 모래는 그것을 움켜쥐면 쥘수록

도리어 손아귀에서 다 빠져나간다는 것을 아는가

하지만 말일세, 망치와 쟁기는 그것을 움켜

쥘수록 힘이 가나니

 

젊은이여, 이참 그대들의 손아귀엔 무엇이

쥐어지고 있는가. 명예? 돈? 권력? 안정?

고수준의 수입? 아닐세 그것들은 움켜쥐면 쥘수록

그대들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 허무라

 

야망보다는 이상. 삶보다는 역사적 실천.

그 실천을 위한 알기(주체)가 되어 뚜벅뚜벅

이 썩어문드러진 세계를 가로 지르시라

 

 


 

백기완(白基玩) 시인(1932~2021)

1932년 황해도 은률군에서 출생. 황해도 일도초등학교를 졸업. 해방 이후 월남.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 이와 함께 민주화 운동. 1973년 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을 펼치다 긴급조치위반으로 옥고. 저서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등. 1985.~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2021년 2월 15일 (향년 89세)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