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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열 시인 / 그믐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4.

김열 시인 / 그믐달

 

 

겨울밤

비탈길

밤하늘

감나무

가계도

 

은밀한 만남을 즐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시집 『여수의 잠」, 《애지》에서

 

 


 

 

김열 시인 / 동백의 방

 

 

동백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안으로 와서 더욱 숭고해진 것들이 동백에게로 흘러갔다

 

방파제에서 나는 한동안 나부꼈다 동백을 먼 북쪽에 두고 돌아서듯

좁고긴 낭하를 걷듯 검소히 걸었다...

 

항구에 닿으려고 여수항을 떠나간 선박들에게 동백의 이름을 주었다 언덕 골목길을 타고 올라가 해풍에 흔들리는 불빛들에게 동백의 신열을 주었다 길을 건너와 갑자기 팔뚝을 잡고 늘어지다 어둔 데로 사라져 가는 늙은 창녀, 그 감춰진 하얀 손길에도 뒤늦게 동백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花信의 밤열차들은 망연히 서 있는 정류장을 지나쳐 달려 갔으나, 다짐처럼 막차들을 떠나보내고 오늘은 견디고 싶었으나...혼자야? 꽃이불 부스스 일으켜 대뜸 뱉어내는 여인숙 주인의 물음에 나는 또다시 나부꼈다

 

이미 알고 기다렸나보다

-여기 쪽방 무명 속, 굳은 어깨 펴고 반듯이 고쳐 눕는데 어느새 동백이

붉게 젖어 오고 있으니

 

 


 

김열 시인

1966년 천안 출생. 2003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여수의 잠』(애지, 2007)이 있다. 20대에는 컴퓨터 학원 강사, 30대엔 주점과 카페, 옷가게도 운영, 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