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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자윤 시인 / 주인 없는 프로필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4.

신자윤 시인 / 주인 없는 프로필

 

 

그가

나의 얼굴을 유행에 물들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의 펜 끝에 짓눌려

한 톨의 살 냄새도 싹 틔우지 못한다

 

나의 하루는

누구와도 스스럼 없이 꽃향기 나눠 마시며

울다, 웃다

어디선가 날아든 휘파람새와

반쯤 벌어진 석류나무 아래

새벽 닮은 침묵 하나 잉태했었다

 

그는 내 날개에 금빛칠을 하고

온 몸을 액세서리로 칭칭감아

전시장으로 내몰았다

그는 치렁대는 장신구 앞에

홀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내 날갯죽지 본능은 분홍 리본 풀어 헤치고

도서관에 처박힌 내 안의 미라를 흔들어

필사적으로 날아오른다

 

거리는 패션이 넘쳐나지만

향수병 속엔 향기가 없고

언제부터인가

애인 입술엔 키스가 살지 않는다

 

이력서에 시인이 넘쳐나지만

시집 속엔 나의 속살이 없고

숲 속 난쟁이들 허풍이 널브러져 있다

 

 


 

신자윤 시인

2019년 《시문학》 신인문학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