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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시인 / 잔설 내리는 새벽길
그는 추적추적 걸음을 뗀다. 묵은 나이 허술해진 몸 탓을 해본다 고달픈 한기가 발끝을 따라 와 함께 걷고 주머니엔 동전 몇 푼 남루해진 인생 담뱃갑으로 구겨져 있다 아직 지켜야 할 것 구겨진 채 체념도 타협도 길들여지지 않는지 시퍼런 바람 살 송곳 된 새벽 겨울이면 삶은 더욱 잔혹하다 마음이 춥다
고통도 힘이 된다던 젊을 때 허풍도 소용없어 한번도 슬픔과 친해지지 못했다 마음에 굳은 새벽 응혈 너무 에려 잔설 서걱이는 길 따라 붙박인 입 봉한 가로수들 더욱 외롭고 세상은 결코 빈곤함에 인자하지 않다 성에 낀 유리창에 비친 모호한 표정 수취인 불명 같은 편지로 가야할 곳 아득하고 어디 멀리 유랑하는 시인의 넋 살아오는지 부력 없는 눈발 흩어진다 눈초리에 얼음 파편 꽂힌 전혀 따뜻하지 않은 몇몇 이들 수상쩍게 그를 스쳐 지나가고 아직도 완강한 삶의 무게로 두터워진 주름살 도시에 또 한해의 겨울 새기는데 짧은 옷깃 막막한 희망으로 추켜올리면 푸슬푸슬 잔설로 재 뒤집어 쓴 길목 따라 그는 오늘도 새벽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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