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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준 시인(속초) / 체 게바라, 그리고 리어카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4.

김영준 시인(속초) / 체 게바라, 그리고 리어카

 

 

체 게바라가 리어카를 끌고 간다

폐지를 가득 담은 리어카는 지열 70도의 아스팔트를 힘겹게 기어간다

폐지의 산은 체 게바라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폐지의 산은 체 게바라를 밀지 못한다

당당한 표정조차 이젠 찌그러져 노인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

땀과 땟국물에 절은 그도

이젠 힘겹다 그래도 기어이 끌려간다

 

가슴에 안은 체 게바라를 노인은 알고 있을까

땟국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대해서

혁명과 자유와 깃발에 대해서 또는

가난과 그 슬픔에 대해서

쿠바에 대해서

 

바람이 불자 폐지가 화들짝 일어선다

노인이 된 체 게바라의 발걸음 뒤로 흙먼지가

아우성 같은 함성을 지른다

혁명이 이랬을까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느 날 문득 떨어졌기 때문일까

 

-시집 <물고기 미라>에서

 

 


 

김영준 시인(속초)

1957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 1984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 『봄을 기다리며』 『나무 비린내』 『물고기 미라』. 현재 '빈터' 동인. <시마을 사람들>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