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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시인 / 키스
붉은 핏줄기가 세로로 주름을 새길 때 나의 맹세는 시간 속으로 사라졌네
참혹함이란 이런 것이라네 우리가 나눈 수많은 키스와 달콤한 밀어도 덧없는 시간이 흐른 뒤 모두 지켜지지 못한 다짐이 된다는 것
거짓을 말하지 않았던 입술도 더운 피를 전하던 입 속의 부드러운 혀도 더 이상 믿음을 남기지 않을 때
내 손등과 뺨 위에 그대가 새겨 놓은 것은 시간의 화석
참혹함이란 사랑의 밀어로 세운 어떤 신전의 기둥도 먼지와 바람의 시간을 견딜 수 없다는 것
붉은 피로 사랑의 언어를 새겼으나 심장의 고동조차도 시간이 흐른 뒤 희미한 기억을 남길 뿐
그러나 진실만을 말하는 입보다 입술의 붉음과 그 윤곽을 사랑했네 모든 말들이 모래와 재로 변하는 동안
입술이 말하거나 그릴 수 있는 것 오직 그것만을 믿기로 했네
-웹진 《님Nim》 2025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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