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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춘식 시인 / 키스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8.

김춘식 시인 / 키스

 

 

붉은 핏줄기가 세로로 주름을 새길 때

나의 맹세는 시간 속으로 사라졌네

 

참혹함이란 이런 것이라네

우리가 나눈 수많은 키스와 달콤한 밀어도

덧없는 시간이 흐른 뒤

모두 지켜지지 못한 다짐이 된다는 것

 

거짓을 말하지 않았던 입술도

더운 피를 전하던 입 속의 부드러운 혀도

더 이상 믿음을 남기지 않을 때

 

내 손등과 뺨 위에

그대가 새겨 놓은 것은 시간의 화석

 

참혹함이란

사랑의 밀어로 세운 어떤 신전의 기둥도

먼지와 바람의 시간을 견딜 수 없다는 것

 

붉은 피로 사랑의 언어를 새겼으나

심장의 고동조차도

시간이 흐른 뒤 희미한 기억을 남길 뿐

 

그러나 진실만을 말하는 입보다

입술의 붉음과 그 윤곽을 사랑했네

모든 말들이 모래와 재로 변하는 동안

 

입술이 말하거나 그릴 수 있는 것

오직 그것만을 믿기로 했네

 

-웹진 《님Nim》 2025년 8월호 발표

 

 


 

김춘식 시인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2002년 《무크》 시 등단. 평론집 『불온한 정신』. 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등. 『시작』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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