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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현숙 시인 / π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8.

최현숙 시인 / π

 

 

 아침엔 쏟아지는 푸름과 눈 마주치고 한낮엔 내리쬐는 햇볕에 무심한 듯 그러나 무모하게 바라보다 마음의 오후에 시차가 생기면 내재율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저녁이 같아지는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나의 공식적인 사이즈는 66입니다

 내면을 통과하지 않은 지름입니다

 

 그러니 나를 완전하게 품겠다면 넓이는 당신이 구하세요

 

 S= ×r² π

 나의 내면의 면적입니다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창문을 쫌 열어 15°

 선을 넘게 하는

 

 3.1415926535897932........

 

 끝 간 데가 없이 아득하여도

 실낱같이 스며들어

 완전성을 잇는

 

 무한 순환되는

 그런 사람 어디 없습니까

 

 


 

 

최현숙 시인 / 와인 한 병 마시기

 

 

 붉은 탄창을 장착했다

 총구를 떠나지 않은 탄알이 어두운 불빛을 희롱하는

 

 오늘

 이 와인이 다 비워지기 전

 나는 오랫동안 끌어온 내 안의 내전을 끝내야 한다

 한 모금 들이켜자 사소한 스침이, 낙하하도록 내버려 둔 슬픔이 한 번도 꺼내 보이지 못한 가슴으로 흘러내린다

 삼킨 말은 마른 잉크처럼 굳고

 네 안에서 첨벙대다 파랗게 질린 말은 목구멍을 타고 넘다 타들어간다

 

 와인 잔에 눈이 닿자

 결심을 비웃듯 빙글빙글 도는

 입체적인 사람과

 입체적인 바램과

 입체적이었던 환상을 깨고

 물물교환했던 한때의 시간을 정조준하다 여차하면 마지막 방아쇠를 당길 작정이다

 내일

 숏컷을 하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이런 밤에는 꿈이 입체적이어야 한다

 

 


 

 

최현숙 시인 / 주말 극장

 

 

 디어 마이 프렌즈

 

 불빛이 사라진 이 도시의 노을은 아주 붉어 주석註釋처럼 달이 떠오르고

 

 암탉이 무정란을 낳듯 탄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때아닌 유성우도 쏟아져 예후가 좋지 않은 병도 돌았습니다

 

 비행운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뉴브강이 아름다운 긴 문장으로 끝나가는 이곳은 폭탄이 터진 자리마다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납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여긴 아직 전쟁 중입니다 곳곳이 실제상황입니다 그래도 계절은 피고 아이들은 뛰놀고 고양이가 가끔 기지개를 폅니다

 

비는 한 지붕에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빵 바구니는 비어가고 되돌아갈 수 없는 전쟁은 흥행하지 못한 주말 극장처럼 지루하게 흘러갑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다시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꼭 만나서 하겠습니다

 이만 총총

 

 


 

최현숙 시인

충남 금산에서 출생. 2024년 《모던포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현재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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