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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창민 시인 / 무서운 꿈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20.
강창민 시인 / 무서운 꿈

강창민 시인 / 무서운 꿈

 

 

떨어질래, 아파트 꼭대기

하늘이 좀더 가까운 곳에서.

떨어지며 스치는 한충한층에

다정한 모음을 던지며

더 낮은 곳을 향해 팔 뻗쳐

내 손톱 땅에 꽂힐 때

나는 튀어올라 별이 될래

나는 귀머거리별, 오오, 거세당한

한 마리 살찐 벌레가 되어

다만 빛날 뿐 빛들지 않는

바보별로 징징 웃을래.

떨어져야 솟구칠 수 있지

밤이라야 배신과 허위의

등불이 또렷하지

증오는 님에게 남기고

사랑은 무덤에 담고 싶어

별로 슬프지 않은 세상에

별로 남아 흐흐흐 별빛을 비추는

나는 바보별

이제 솟구칠래.

 

 


 

 

강창민 시인 / 별

 

 

외롭게 빛나리라

어둔 누리에서

 

우리가 모두 별로 불리어질 땐

메밀밭에 어깨를 맞대고 핀

메밀꽃처럼

그리 외롭지 않았다.

 

우리는 외로와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이지만 이름은 아니었고

이웃별이 빛나도

지척은 분명한 거리였다.

 

나에게도 별인

이웃별의 만남

추락하던 별의 길게 끌리는

아, 하던 탄식

뚜렸한 우리들의 자리.

 

우리는 서로의 빛남을 지켜보았고

혼자였을 때보다

저리 많은 이뭇별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와했다.

 

빛나지 않으면 외롭지 않고

외롭지 않다면

우리는 별이 아닐 것이다.

빛냄보다 빛남이

빛남보다 외로움이 되고자

우리는 별이 되었을 것이다.

 

어둔 만큼 빛나리라. 우리는

외로울수록

혼자 반짝이리라

 

 


 

 

강창민 시인 / 모래내 다리 근처 2

 

 

어둡다.

 

별은 보이지 않고

별보다 먼저 켜지는 노점의 등잔들.

사람을 기다리는

늙은 사내와 애 밴 계집들.

 

아무도 좌판 앞을 지나지 않고

모래내의 썩은 물만 흘러

썩은 곳에서 죽은 곳으로

빈 교외선 열차가

불을 켠 채 흘러간다.

 

헐린 술집 터에

작부들이 부르다 만 노래 끄덩이

땅 아래 깊숙이 파묻히고 만다.

 

어디로 갔을까

밤이면 노래 부르기 시작했던 계집들

술 취해 어디로 갔을까

 

건너 둑 위에 웅크린 어둠

어느 시든 잡풀 대궁이에서

낮 내내 아이들에게 쫓기던

잠자리 한 마리가 추운 잠을 잔다.

 

추운 잠.

춥지 않다면 껴안지 않고

모래내 사람처럼

서로를 가여워하지 않을 것이다.

 

밤이면 더 힘이 솟는

공사장 인부들의 해머 소리가

점점 다가오면

늙은 사내와 애 밴 계집들은

황급히 좌판을 거둔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잠을 자두어야 한다.

집이 헐리기 전에

모래내 사람들은 잠을 자야 한다.

 

 


 

 

강창민 시인 / 야간비행

 

 

저 도시를 좀 봐.

어두워져야 비로소 빛나기 시작하는 집들

밤 깊어지면 몰래 불끄는 창문

잔뜩 흐려 별조차 뵈지 않는 저 땅과 하늘의 우울

꽁무니에 빨간 불을 달고 사라지는 차들

어둠에 제 몸 얼른 묻는 저 숲들

바람켜로 급히 숨는 사람들의 추운 뒷모습

갈 별이 없는 자들은 어디로 갈까.

수많은 별 틈에 서서 떨며

가슴속에 옛 별을 하나 꺼내들고

어느 낮은 곳에다 추운 몸을 눕힐까.

저 어두운 도시를

춥지만 높은 이곳에서 좀 봐.

 

 


 

 

강창민 시인 / 거울에다 쓴 편지

 

해는 서편으로 돌려보내고

비는 개울로 돌려보내고

그대가 보낸 노래는

다시 그대에게 돌려보낸다.

꽃은 꽃에게로 돌려보내고

바람은 불어온 창 밖으로 돌려보내고

그대는 그대에게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어이 하리,

이 그리움, 이 슬픔은

돌려보낼 곳이 없구나.

 

 


 

강창민(姜昌民) 시인

1947년 경남 함안군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76년 [현대문학]에 <나무꾼의 노래> <투우> <표류자여 표류자여>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4. 연세문화상 '시부문' 수상. 시집 <비가 내리는 마을>. 1992년 서경대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2년 한국문학연구회 회장. 1992년 한마음문화연구원 이사, 한마음문화연구원 부설 한마음수련원 원장. 제15회 박두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