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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주 시인 / 검색어 외 10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23.
강주 시인 / 검색어

강주 시인 / 검색어

-토끼

 

 

 음성적 물고기와 낯빛이 하나의 얼굴에 떠오른다. 24시간을 주기로 흔들리는 꼬리와 또 하나의 꼬리. 멀리 있는 능선과 오물이 가득한 저장고와 떨어뜨린 귀는 자정을 잃는다. 토끼를 입력하면 장거리와 분홍과 등껍질과 느리게 더 느리게 껑충. 너와 나를 봉합하는 시간의 흉터로 남아 있는 피부들을 지나간다. 남녀노소의 인종들이 가로와 세로로 이어진 단단한 벽. 미술관은 지난주를 전시한다. 비눗방울이었나. 비누가 방울이 될 수 있다니. 날아가는 소리라니. 더구나 가장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다니. 아름다워라! 소멸의 기적이 울리는 열차가 지나가는 선로는 더 높게. 아홉 개의 별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별은 이유가 될 수 없어서 별은 다섯 개이거나 별은 없다. 확성기에서 건져 올린 귀는 뒤집어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귀. 오, 아름다워라! 의미는 알면 알수록 과장 깊고 어둡다는 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오전과 오후. 너의 시작은 오후였나, 아니 오전이었나. 모든 시작에 네가 있었나. 음성적 물고기와 낯빛이 섞인 하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24시간을 주기로 흔들리는 꼬리와 또 하나의 꼬리 사이에 너는 태어나고 집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있고 엔터. 오, 정말 아름다워라!

 

-시집 『99가지 기분과 나머지』 (달을쏘다, 2023)

 

 


 

 

강주 시인 / 비공식

 

 

 너와 헤어질 때 맞잡은 손이 떼어지듯 우릴 감싸고 있던 어둠은 흐트러졌다. 어제 우린 눈사람 속에 있었다. 꼼짝 않고도 가장 멀리 갈 수 있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는

 

 반짝이는 것

 

 너의 목소리로 나를 읽는 동안 그림자는 조용히 흔들렸다. 첫눈이자 폭설이었다. 눈송이로만 연결된 세계였다. 조명에 따라 몸의 일부가 켜졌다 꺼지는 동안 누군가는 춤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아노는 독주 악기를 넘어 무한한 가능성이어서 실험 정신이 필요하므로“* 피아노다. 이런 말과 몸으로 내리는

 

 눈雪

 

 밟히고도 쌓을 줄 아는 눈을 본다. 눈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처럼. 리스트의 초절기교처럼. 쇼팽의 녹턴처럼 녹고 쌓이면서 눈이다. 가장자리부터 젖기 시작하는

 

 피아노다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을 때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비공식 공연이었고

 

 홀로 서 있는

 눈사람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대진 피아니스트 인터뷰 내용 중에서

 

-계간 『시사사』 2024년 겨울호 발표

 

 


 

 

강주 시인 / 산을 그리는 이유

 

 

산을 그리세요. 아주 멀고 먼 산을

 너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많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산을 그리라고 했을까. 산을 그리기 전에 오랫동안 산을 생각해야 했다. 산은 생각할수록 점점 깊어져서 시작이 어려웠다

 계절마다 나라마다 모습이 다른 산을 떠올렸다

 지금은 여름이고 지금은 아시아고 지금은 한낮이고 지금은 맑은 날씨

 지금은 곧 사라져서 지금의 산은 곧 지워져서

 산을 그리려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리고자 하는 산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산을 상상하기로 했다. 울창한 숲을 떠올렸는데 얼마 전 산불로 활활

타오르던 나무들이 떠올랐다. 아우성에 가까운 산울림이 내게도 옮아 붙었다. 나는 홀로 타올랐는데 순식간에 산을 몽땅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제야 푸른 산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산을 되찾아야 하는지 헤맸다

 우선 선을 긋고 특별히 곡선과 직선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제법 그럴듯했다. 선이 겹치고 선이 떨어지고 선으로 산을 조금씩 이루어갔다. 결국 산은 선이었다

 우와! 한번 가보고 싶은 산이네요

 너는 그렇게 말했고 산을 그린 사람들이 그림을 들어 올렸을 때 산은 제각각이었다. 헐벗은 산 캄캄한 산 단풍으로 물든 산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 높은 산 먼 산

 보이는 산 보이지 않는 산,

 산을 그리라고 한 이유가 저마다의 그림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웹진 「님 Nim」 2023년 6월호 발표

 

 


 

 

강주 시인 / 밤을 흔들어서 듣기

 

 

 모르는 좌표처럼 놓인 레몬즙 같은 날씨야.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왜 아름다운지 아무도 말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을래

 소도시의 아침 풍경은 누군가 잘 맞춰놓은 레고 같아. 조용하지만 조금씩 흐트러지지. 소규모의 붕괴가 끊임없지. 우린 괜찮은지 묻지

 매일과 서로에게

 덧칠하는 물감처럼 섞여. 흘러내리고 굳고

 

 온종일 무감동이라면 다시 덧칠하고 다시 흘러내리며 감동을 만들어야지. 온몸으로. 감동을 숭배하진 않지만 감동 없인 우린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린 드문드문 흐르는 구름 같아서 갑자기 쏟아질 수 있지. 부풀어 오르는 적운을 이해하지.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말하지

 최후의 숨결처럼

 아무도 웃지 않아서 웃을 때까지 계속되는 농담처럼. 가장자리에 덧붙일 형용사가 필요해서

 모르는 세계를 절취해

 깨진 도자기를 웃는 얼굴로 덧붙인 잔인한 희극처럼. 흔들리는 밤이야. 밤이야. 흔들리는

 

계간「시산맥」2023년 가을호 발표

 

 


 

 

강주 시인 / 날씨는 한 쌍의 날개 같아

 

 

 바람과 해질녘과 썰물로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너는

 모서리를 펼쳐. 그것은 작은 방 종이비행기 젖은 눈썹 꺼낼 수 없는 마음. 새벽이 잃어버린 한 페이지처럼

 네 얼굴은 흩날리는 꽃잎 슬프고도

 아름다워서 밤이 부르는 돌림노래. 너는 결혼하고 딸을 낳고 딸이 다시 딸을 낳아서 더 슬플까. 아름다울까. 연인이 주고받는 혀처럼

 결혼은

 우리의 맹세는 메리로 이루어졌지. 젊은 나이에 우리를 떠난 메리를 아무도 몰라서

 가로와 세로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맹세. 그것은 모자 속에서 들리는 메리의 휘파람. 커졌다 작아지며 깊은 협곡을 지나는 그것은 휘파람과 메리

 노래를 지니고

 갔어

 산등성이를 연결하며 오래된 이야기를 마음과 마음으로 들이쉬고 내뱉지. 발바닥이 닿지 않아도 읽히는 지면. 모자를 씌우면

 날씨는

 메리와 지평선이 한 쌍의 날개 같아

 

월간-「모던포엠」 2023년 2월호 발표

 

 


 

 

강주 시인 / 소용돌이 숲

 

 다만 흩어지고 있었다

 

 숲에서 나온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랐고 흔들렸으며 결국 숲에 동화되었다. 전깃줄로 지우는 풍경 속에서

 

 자주 꺾이는 마음

 

 취소할까요? 굵은 힘줄을 장담했지만 실패했으므로

 

 수증기로 가득한 욕실에서 희뿌연 거울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닦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고

 

 손을 뻗으면

 손의 내부가 생기는 것 같았다. 터널을 통과하거나 눈이 녹는 손. 녹슨 손. 손을 후-불면 사라지는 모든 순간과 이어진 손이 떠올랐다

 

 손은 얼마나 멀리 떼어질까

 

 창밖으론 시계탑 주위를 맴돌고 날아가는 새떼가 시간의 안팎을 드나들며 얼마나 먼 시간까지 날아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다만 흩어졌다,

 

 모이는 숲. 보이지 않게 자라는 울창함 속에 한 그루로 있었다. 형태를 바꾸며 어떻게든 손을 유지하면서

 소용돌이치는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숲은 흘러넘쳤다

-월간 『모던포엠』 2024년 6월호 발표

 

 


 

 

강주 시인 / 젠가식 글쓰기

​​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글을 쓰고 있다. 에너지를 쏟아 부었어. 연필을 깎으며 기운을 북돋우며

 

 견디면서. 천천히 오는 아픔과 슬픔. 고장 난 시간을

 

 말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계속되는 오염과 전염으로 말은 수많은 사례가 될 뿐. 불친절하게

 

 이것이 해피엔딩이래. 나의 비극이 너의 희극이기도 하니까. 젠가 게임에서 뽑은 막대 하나엔 이렇게 적혀 있다

 

 -상처를 힘껏 문질러 봐

 

 젠가 게임은 상처 지우개가 될 수 없으므로 벌칙을 선택한다. 젠가는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어서 쉽게 무너진다고

 

 힘껏 쏟아진다고,

 

 소식이 뚝 끊긴 친구처럼 나의 약속은 정전 상태다.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도 될까. 일상은 미스터리에 가깝고 이야기는 깨진 흉상이라고

 

 쓰다가 무너졌다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글은 쌓여 있는 젠가의 첫 번째 구멍이고

 

 어렵게 쓰고,

 

 쉽게 지워지는 벌칙에 불과했다

-월간 『모던포엠』 2024년 6월호 발표

 

 


 

 

강주 시인 / 소원에게 물 주기

 

 

 하나의 소원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끝없이 증식한대. 간절했던 소원이 끔찍해지는 거야. 소원에 갇혀 질식하는 거지. 소원은 깊고 출렁여서 헤어나올 수 없대. 결국은 가라앉고 말아. 대부분의 죽음은 소원 때문이야. 하지만 그걸 눈치채는 사람은 흔치 않아. 아무도 모를 수 있지. 소원은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잎사귀를 넓히니까. 종려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소원을 본 적 있어. 돌멩이로 쌓아 올린 소원도. 잿더미처럼 흩날리는 소원도. 선인장 가시에 맺혀 있는 소원도. 모두 같으면서 다른 소원이지. 팔꿈치를 굽힐 때마다 소원이 쏟아지지. 보이지 않는 소원과 말하지 않은 소원의 미래 같아. 조금씩 키가 자라는 스투키를 옮기듯 소원은 여기에서 저기로 옮아가며 이유 없이 자라고 이유 없이 죽곤 해. 소원의 최후이자 최선 같아. 이루어진 소원은 죽는 걸까. 이루어지지 않아서 죽는 걸까. 침엽과 활엽으로 나뉘는 기준처럼 울창하고 자연스럽지. 소원을 통제하려고 인간을 복제했대. 복제 인간에게 소원을 투입하고 쏟아지는 소원은 폐기되지. 소원을 소원하려고 먼 우주로 날아가. 광활한 미지가 필요하니까. 무수한 소원에 둘러싸이면 소원은 소원인지도 모르니까. 조그만 유리병에 작은 씨앗처럼 전시된 소원을 봤어. 소원에게 물을 주고 빛을 쬐며 정성을 쏟았지. 마치 한 그루의 나무인 것처럼. 없는 모양을 그려주고 색을 입혔어. 무럭무럭 자라줘. 나를 뚫고 나와줘.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야?

 

「상상인」 2023년 7월호 발표

 

 


 

 

강주 시인 / 애프터 눈

 

 

 두 개가 마주 보거나 여러 개를 늘어놓으면 무서워. 한 개에 집중해도 다른 개가 달려드니까. 이런 이유. 이런 결국. 눈은 몸과 따로 놀아서 불안하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못 볼지. 위험천만하지. 그래서 다행인지도 모를. 애프터 눈. 자연을 모방해서 불규칙한 질감이 만져지는 패브릭을 덮고. 쏟아지는 애프터 눈의. 검은 토끼가 달리는 시공간. 타일 여러 개가 무늬를 이으려고 귀를 접지. 어지럽지. 공간에 포인트를 더하려고 램프를 켜듯 장난스러운 일화를. 말하고 듣다가 기울어지는 초상화처럼 장르와 상관없이 계속해온 붓질처럼. 입질처럼. 평행을 깨뜨려. 바닥을 쪼는 비둘기의 부리처럼 노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이처럼. 순식간의 화풍을 화가가 시대를. 꺾인 붓으로. 강요할 수 없는 깊이를 몰아쉬고 뒤로 넘겨. 전망과 올리브 나무는 높을수록 조화로워. 안쪽으로 당겨 앉아. 마주보며 두 개로 여러 개로. 한 개에 집중해서 다른 개는 사라져. 당황하는 꼬리처럼. 궁금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익명의 찬사. 익명의 천사들처럼

 

월간 『모던포엠』 2023년 2월호 발표

 

 


 

 

강주 시인 / 무늬로 새겨듣기

 

 

​ 동그랗던 스콘을 무너뜨릴 때 포크를 사용했다. 포크는 단단하고 빛나지만 사랑스러워서 무너뜨릴 때조차도 엔틱하다. 사방은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배경을 가진다. 깨질 것 같지만 단단하게 굳은 마음 같다. 어딘가에 조그맣게 실금이 파묻혀 있을지도 모를. 새로운 제3의 얼굴이 너의 이름으로 너를 갱신할지 모른다. 앞뒤 없이 펄럭이는 미래 같다. 옆으로만 뻗어가는 식물의 줄기가 길게 세로를 떨어뜨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새로운 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천정은 너의 머리가 닿지 않게 얼마쯤 띄어 쓸 줄 알고 벗어나면 각자 텅 빈 공책을 한 권씩 가질 수 있다. 그때부터 시작은 매번 각오할 수 있다. 가장자리가 없는 뼈로 굳은 온갖 잡념 속에서도. 우뚝 솟아 펄럭이는 훼손된 미래처럼. 비눗방울이 솟아오르는 네 마음을 바라본다. 빗방울과 비눗방울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도 생기를 북돋는다. 부스러기로 반죽을 만들고 부스러기로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얼룩에 대해 무늬로 새겨듣기. 정물에 가까운 생물에게도 너는 매일 물을 주고 기다릴 줄 안다

 

격월간 『현대시학』 2023년 5~6월호 발표

 

 


 

 

강주 시인 /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ʰ

 

 

 모든 발걸음은 실수가 될 수 있지. 그러니 있을지도 모르는 똥을 피할 수 있게 걸어야 해.ʰ 잠시 마음이 다른 세계로 향할 때 뒤틀리는 몸을 이끌어 전진해. 마음이 닿는 곳에 몸을 둬

 

 파도가 이끄는 바다처럼

 

 솔숲이 우거진 모래밭을 서성여. 흩어지는 마음으로 홀수를 맞이하는 나이를 여며. 곳곳에 홀수는 많고 홀수는 자라고 넘쳐나니까 홀수는

 

 공공시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대부분. 여분의 구멍은 숨기에 좋아서 구멍을 찾거나 만들거나 역시,

 

 구멍은 익명성이야. 구멍은 즉흥적이지. 구멍은 낙오자들이 부르는 노래

 

 생동감이 없는 표정을 그릴 때

 무심하고 요긴하게 쓰이는 붓처럼 구멍을

 

 활용한 동작들. 남녀노소가 연출하는 공간 속에서 겨울은 짧은 붓. 행인의 지나가는 콧수염에 내려앉는 눈송이와

 

 찰리 채플린

 

 내가 아는 찰리 채플린과 다른 채플린. 광대뼈가 불거진 시간은 지워지지 않고 채플린은 잊지 않을래. 날은 점점 어두워져

 

 아침 신문엔 눈이 내리지. 눈 속에 파묻히는 기사와 날씨와 사람들이 있곤 해. 아득해지는 오늘과 다시 딛을 수 없는 마음들이 드문드문 발자국처럼

 

h: 존 버거

 

계간 『상징학연구소』 2023년 여름호 발표

 

 


 

강주 시인

강원도 동해에서 출생. 2016년 계간 《시산맥》신인상으로 등단.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흰 개 옮겨 적기』 『99가지 기분과 나머지』, ​2019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제1회 정남진 신인시문학상,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