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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 / 나무에 대하여
대추나무를 전지하면서 살펴보니 나무의 가지와 가지들은 결코 서로 다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가 위로 혹은 옆으로 내벋어가다가 다른 가지와 마주칠 때 반드시 제 몸을 휘어서 감돌아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나무들을 보니 나무란 나무는 모두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무의 이치를 알고서 세상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차고 꺽고 심지어는 제 살기 위해서 남까지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 중에서도 풀과 나무를 만지고 살거나 마음 속에 풀과 나무를 가꾸고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무의 겸양과 조화로움을 조금은 닮아 있는 것이었다
이동순 시인 / 꽃나무
꽃나무를 본다 잎은 따가운 햇살 바늘을 초록 손바닥으로 받으며 견디고 가지는 겨울 삭풍을 앙상한 온몸으로 아우성치며 견디었다 뿌리는 또 어떠한가 늘 캄캄한 땅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단 한 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적이 없었다 이런 세월 지나서 드디어 감격스러운 꽃 피웠다 꽃나무를 보면서 꽃만 곱다고 말하는 그대여 꽃이 저리도 고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잎과 가지와 뿌리의 고통 덕분이다. 왜 그것들을 보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이렇게 어여쁘고 소중하다
이동순 시인 / 늙은 나무를 보다
두 팔로 안을 만큼 큰 나무도 털끝만 한 싹에서 자랐다는 노자 64장 守微*편의 구절을 읽다가 나는 문득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감동은 대개 이렇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 평소 아침 산책길에 자주 만나던 늙은 느릅나무 영감님 앞으로 다가갔다 느릅은 푸른 머리채를 풀어서 바람에 빗질하고 있었다 고목의 어릴 적 일들을 물어보아도 묵묵부답 다람쥐가 혼자 열매를 까먹다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 그 자리에는 실낱처럼 파리한 싹이 하나 가느다란 목을 땅 위로 쏘옥 내밀고 있는 참이었다
* 수미 : 노자가 쓴 <도덕경>의 한 부분.
이동순 시인 / 쌀국수
거리를 걷다가 배가 고파 길가 식당에 앉았다 ‘퍼’라는 이름의 쌀국수 사발에 담겨온 국숫발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나는 유심히 눈으로 살펴보다가 일부러 씹어서 그 감촉 느껴보기도 했다 삶은 고기 국물에 싱싱한 녹두나물 듬뿍 얹어서 아삭아삭 먹는 그 맛은 얼마나 상쾌한가 힘없는 면발에선 수십 년 동안 식민지 종살이로 살아온 베트남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이 느껴진다 국수를 다 건져 먹고 남은 국물 단숨에 들이킬 때는 그 불행과 줄기차게 싸워 끝내 하늘의 밝은 해 되찾은 감격도 느껴진다
이동순 시인 / 괭이 갈매기
이 녀석은 즤가 고양이인 줄 알고 가파른 담장 모서리를 살금살금 걷는다 이 녀석은 지붕 위에서 아슬아슬 걷다가 갑자기 갈매기처럼 바다로 날아간다 이 녀석은 다리 난간이나 가로등 꼭대기에 엎드린 채 먼 수평선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 녀석은 노란 부리로 앞 가슴 깃 다듬다가 뭐가 못마땅한지 자꾸 고개 들고 가르릉댄다 이 녀석은 길 잃은 병아리를 마구 쪼고 찌르며 까불다가 틈만 나면 양지쪽에서 눈 감고 존다 이 녀석은 깊은 밤 등대처럼 눈 깜박이다가 멀리 일본 순시선 보고 놀라 크게 야옹거린다
이동순 시인 / 독도 등대
우리 국토의 머나먼 동쪽 끝에서 혼자 잠들지않고 서서 기다리다 맨 먼저 깊은 어둠 몰아내는 등대 아시는가? 바닷속 몰려다니는 오징어 잡느라 꼬박 밤새는 저 고단한 어민들 앞길 밝혀 주느라 함께 밤 지새는 등대 아시는가? 틈만 나면 침탈의 기회 엿보고 순시선 보내어 주도권 빼앗으려는 일본 그 흉계 살피는 등대 아시는가?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독도이사부길 63번 그 옛날 신라 장군 부신 눈빛으로 우뚝 서서 나라 땅 지키는 보초등대 아시는가?
이동순 시인 / 형제섬
독도 바다 밑에는 엄청나게 넓은 대륙붕 있어 그 위에 만들어진 산과 언덕과 벼랑과 너럭바위 독도란 섬은 이 대륙붕 위에 솟은 두 개의 바위산
바닷 속에 잠긴 산 광대하지만 뽀족이 물 위로 고개 내민 두 개의 봉우리 그게 바로 동도와 서도일세
아름다운 형제섬 그들 둘은 가까이서 심심할 틈이 없네 물 밑 이야기 물 밖 이야기 대륙붕엔 물고기 얼마나 많은지 오늘은 또 어떤 물고기 새로 왔는지 물속 목장엔 온갖 해초 잘 자라고 있는지
바위 밑에 고인 석유와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여전히 소중하게 잘 갈무리되고 있는지 그걸 자꾸 탐내는 일본을 어떻게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지 두 형제섬은 종일 그런 이야기 나누느라 바쁘네
이동순 시인 / 눈물에게 자유를 주다
대지의 풀들은 내 가슴 높이에 있다 나는 반지하의 춥고 눅눅한 방에서 이른 봄을 내다본다 봄은 자신의 푸른 가슴을 드러내고 싶어 땅속에서 안달이 나 있다 바람이 가랑잎을 마치 강아지 굴리듯 휩쓸며 불어갈 때 다람쥐란 놈은 도토리를 먹다 말고 그 광경을 멀뚱히 보고 있다 아, 낯선 땅 스프링필드 언덕에서 머나먼 고향의 봄을 생각하며 젖은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던 사람은 모두 어딜 갔느냐 방안의 습기는 필시 그들이 남긴 눈물의 흔적이리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방안에 수년째 갇혀있던 눈물의 습기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하늘로 새처럼 날려 보낸다 가라 눈물이여 더 이상 춥고 어두운 곳에 갇혀 있지 말고 푸른 숲에서 맑은 소리를 내는 어여쁜 노래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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