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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은 시인 / 셋의 풍경 —토요일
오늘 우리 반 아이들 셋이 죽었어요.* 가위바위보. 아이들은 순서를 매기고. 사자는 동그라미 속에 있어요. 들리는 모든 것은 동그라미. 아이들은 겹겹이 접혀진 책장 속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글씨의 굴곡 밑에는 어떤 색이, 어떤 촉감이, 어떤 은밀함이 숨어 있는 걸까요? 쓰다듬어 본다
선생님에게 이름을 알려 주세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토요일. 기꺼이 변형을 참아 내는 아이들. 선생님에게 들려주세요. 복지관 수업이 끝나면 왜 점심은 먹지 않니? 저요 저요 저요. 들리는 모든 것은 동그라미. 아이들은 사소한 물음에 손을 늘이고. 서로의 꿈을 헤집어 본다. 모르는 것들을, 그저 모르는 것으로 남겨 두려는 모든 의뭉스러운 아이들. 쓰다듬어 본다
벌려 냄새를 맡아 본다. 너무 작은 세계. 문장의 화음이 맞질 않아요. 충분히 감춰진 세계.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 종이 위에서 나는 조금 아프고 부끄러워요. 저는 오늘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아요. 가위바위보. 아이가 순서를 매겨 웃는다. 너무도 깊고 무심한 놀이의 세계. 들리는 모든 것은 동그라미. 우리가 만든 문장은 ‘폭압적’인가요? 문장은 잊히고. 쓰다듬어 본다
지우개를 빌려 서로의 몸 구석구석에 남은 손끝을 문질러 지우는 아이들. 너의 자국. 셋의 풍경 *
* 오정희, 『새』.
조혜은 시인 / 식탁 -침묵이 흐르는 시간
모서리에 피가 고인다. 침묵이 식탁을 타고 흐르는 동안 침방울이 주르르 식탁 아래로 떨어진다. 하루 종일 잠 들어 있던 그의 휴일에 나는 기계처럼 동작했다. 꿈꾸듯 춤추는 나의 손과 발, 마침내 그가 저녁으로 튀김 요리 를 내왔다. 나의 몸은 취한 듯 강제로 섭식하고, 우리는 씹기를 멈추지 않았다. 식탁 모서리에 부딪힌 아기의 눈 에서 소리도 없이 피가 흘렀다. 식탁 아래에서 아기가 내 무릎에 침을 묻히며 다리에 매달렸다. 우리가 밥을 먹 는 동안에도 셔츠 밑을 파고든 그의 손은 내 가슴을 뒤적였고, 젖꼭지에는 그의 덜 자란 이가 아기의 것처럼 박 혔다. 식탁위에 오른 튀김은 뜨거웠고 그가 방금 잠재운 아기의 발은 차가웠다. 나는 내가 고른 식탁을 깨끗이 닦았다. 그는 이 집을 채운 나의 노력 가운데 식탁을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식 탁에서 내 것들을 치우라고 그가 명령했고 나는 소리가 나는 것들을 식탁 밑에 매달았다. 땡그랑땡그랑. 식탁 위에서 그와 밥을 먹고 밑에서 나의 작은 아기와 눈을 맞췄다. 하루는 아기의 젖은 이가 수술 자국 짙게 벤 나의 배를 깨물었다. 그날 이후 모든 어둠이 까맣게 멍들었다. 냉 동실에는 내가 멈춰서 넣은 시간이 향기와 맛을 잃은 채 머물러 있었고 아기도 그도 냉장고를 좋아했다. 지긋지 긋해. 나는 이 온건한 행복이 소름 끼쳤다.
우리에게 아기가 있다면 어땠을까. 그가 물었고, 벌린 다리를 닮은 나의 몸 구석구석에서 무기력한 빛깔의 피 가 흘렀다. 식탁 모서리에 부딪힌 아기의 눈에 흉터가 생겼다. 고통을 견디는 자그마한 몸이 무서웠다. 부르르 떨자 푸른 멍이 든 배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오늘도 밤이었다. 사람들은 식탁 앞에 모여 원인도 모른 채 내 입술에 아기의 입술을 가져다 댔고 우리들 축복 했다. 나는 가끔 배들 가로지르는 11센터의 투박한 흉터들 만졌고, 나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그는 내 허리들 누르고 나를 벌리고, 벌어진 나를 또 벌렸다. 그는 식탁에 앉아서 내 셔츠 안에 손을 넣고 내 가슴을 뜯었다. 늘 어지고 물 빠진 옷들이 벗겨져 식탁 밑에 흩어지고. 식탁 밑에서 머리를 박는 아기.
아기와 눈을 맞췄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그와 밥을 먹다가 밑으로 내려가 아기의 입에 먹을 것을 부지런히 넣어 주었다. 제발 정신 좀 차려! 그는 밥을 씹고 또 삼키며, 그는 나를 모독했다. 그와 아기는 나를 빨아 먹었다. 식 탁 밑으로 침방울이 주르르 흘렀다. 침묵이 흐르는 시간. 지긋지긋해 달아나려는 내 발목에 나의 아기가 매달 려 입을 '아' 벌렸다. 왜 그래? 마침내 그가 내게 물었다. 식탁이 움직이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가진 행복에 멀미 가 났다. 가정이란 끔찍한 환영, 악몽 같은 거야.
-시집 『신부수첩』<문예중앙시선, 2016>
조혜은 시인 / 당신과 헤어졌다
몸을 섞고 침을 섞고 잠을 섞고 밥을 섞고 별을 섞던 한 남자와 헤어져 비밀처럼 남이 되었다 이제 진짜 글쟁이가 되겠구나 습관처럼 아픔을 밟아 나를 닮은 글을 쓰고 싶었다면, 피멍든 거짓일까 뱃속의 아이가 발버둥을 쳐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밤 너는 닮지 말라고 해라 나는 우유부단해서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낳는 거라고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는 불행할 거라고 당신들이 입을 모았다 당신과 헤어졌는데도 수많은 당신들이 나를 따라와 유일한 당신일 때보다 더 다정한 당신들이 다가와 말했다 진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나만 아는 거짓일까 단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나쁜 마음을 먹고 싶었다면 수많은 당신과 매일 밤 헤어지고 매일 밤 가족을 버릴 수많은 이유를 만들어, 헤아릴 수 없이 더러운 새 옷을 짓거나 낡은 구두 굽을 수리해가며 문을 나섰다 어디에서건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렸다 눈으로는 읽을 수 없는 아릿한 광경들을 쓰고 싶었다 소화되지 않는 그리움을 아이의 동생에게 선물했다 아이들은 가벼운 영혼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헤어졌는데, 모두가 당신이 되어 내게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나는 당신들의 비난에 맞는 진심으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코 당신에게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비밀처럼 살아남아 반짝이길 원했다 엄마가 잘살게 해줄게 아이를 찾아 헤맸다 배를 쓰다듬었다
-詩 전문계간지『포엠포엠』2015년 가을호
조혜은 시인 / 여름 불청객
모래에 얼굴을 묻게 되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설렜다
그는 표정이 많은 사람 나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의 기나긴 표정을 흉내 냈다
휴가나 해변은 어울리지 않아 우리는 여덟 시간 동안 바다에 있었다
언제든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단추가 풀어진 그의 검은 셔츠와 단정하게 올라간 옷깃의 반쯤 접어 올린 소매와 체온을 발음하는 목덜미와 끝나지 않는 여름의 결연과 절연
너의 악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돌아오는 여행의 끝에서는 오후는 있거나 없고
끝나지 않는 비소식이
우리는 꿈에서 만나
걷는 것 말고는 사랑을 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고는
쓸 수 없는 무언가가 이뤄져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지만
그는 도망자처럼 스치듯 나에게 귀 기울여주었지
너는 미운데 좋은 사람 머물게 하고 싶지만 갔어야 했을 사람 무례하게도 선량한 슬픈 사람
그곳은 너의 표정과 비슷했으나 결코 이뤄지지 않을 나의 세계
모든 행복은 불안했고 묽은 죽을 쑤는 여인처럼 처량했지
여름은 더 이상 요약되지 않았다
조혜은 시인 / 노키즈존
"나의 인류애는 다른 곳에 있어요 시는 그저 내게 안식일 뿐이에요"
엄마는 노키즈존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키즈존에 머물렀다 아이 금지 사는 것은 위로뿐이에요
어느 안식일에 우리는 키즈카페를 벗어나 아이가 허용되는 카페에 왔다 카페의 화장실 옆에는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미술 체험존이 있었다
엄마는 노키즈존이 우리의 머리 위로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들은 커다란 공간에 엎드려 어른처럼 주스를 마셨다 바닥에 얼음을 뱉다가 혼이 났다 더 이상 소음이 내려갈 곳 없는 바닥의 밑바닥에서 그 이상 뛰어놀 수 있다는 잔디밭에 놓여졌지만 마음껏 노는 것은 금지되었다
아이는 재앙과 같아서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어른들은 위로 올라갔다 세상은 아이가 없는 어른을 배려할 필요가 있어요
세상은 온통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고 불평들인데 우리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무연한 울음도 금지되었다
많은 날 동안 엄마였던 당신은 가끔씩 우리를 벗어나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의 공간에 동반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많은 날 동안 당신을 위로해준 건 엄마였을까 시인이었을까
아이들의 공간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은 이기적이었고 아이들은 악마보다 무질서했다
나는 아이가 없습니다 당신의 인류애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물었고 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당신의 인류애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울었다
아이가 없는 어른의 있음과 어른이 죽인 아이의 삶 사이에서 빼앗긴 안식과 마땅한 위로 어디쯤엔가
당신은 생각하고 당신은 고뇌하고 누군가 조금은 행복하다고
아무도 불행을 낳지 않으려는 곳에서 넘쳐나는 것은 이미 태어난 아이들뿐이었다
엄마의 삶과 인간의 삶과 버려진 몸과 인류애 속에서
우리는 아이가 없어도 다른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아이였을 때 어른을 증오했던 것처럼 우리는 아이를 경멸할 수 있어요 내가 아이였던 것처럼 그들도 언젠가 어른이 되어야만 하니까요 아이는 우리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요
서로를 죽이며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인류가 되었다
-계간 《시와사람》 2019년 가을호
조혜은 시인 / 주말연습 더 묻지 않았어요 칠이 벗겨진 목조 의자처럼 버려진 유원지의 모습으로 음산하게 웃고 있었어요 어떤 발랄함은 칠이 벗겨진 슬픔이구나 주말마다 아빠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운전했어요 조용히 하라고 욕을 하며 좋은 곳에 데려갔어요 너희는 너무 버릇이 없어 아빠는 눈을 감고 운전했어요 우리는 들키면 혼나는 진실을 감추려 거짓을 공고히 세우고 단란한 주말에 결박당한 맥쩍은 표정을 깔고 앉아 아빠의 옆에 앉은 서로를 부러워했어요 좋겠다, 나도 아빠 옆에 앉아서 아빠를 때리고 싶다 우리는 너무 버릇이 없어 나무들에 둘러싸인 공원에 내려졌어요 그늘이 많은 얼굴로 우리가 서로를 봐주면 좋을 텐데 우리는 음란하게 서로의 흉을 파고들었어요 오늘 재미있었지? 주말이 지나기 전에 아빠는 꼭 물었어요 연약한 허벅지 안쪽과 팔뚝 안으로 피가 고였어요 아빠의 허리를 밟고 배를 발로 걷어차는건 우리의 오랜 버릇이었어요 엄마, 엄마, 내가 무서운 이야기 들려줄게 옛날 옛날에 돼지가 있었어요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건 동생의 오랜 버릇이었어요 분만틀에 갇혀 삶이 멈춰버린 채 살아 있는 엄마 도구가 된 엄마를 사랑하는 건 나의 오랜 버릇이어서 칠이 벗겨진 목조 의자처럼 버려진 유원지처럼 흉물스러운 사랑을 구걸했어요 날 안아줘요 슬픈 웃음을 지었어요
조혜은 시인 / 이면지-사실
내가 가고나면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겠죠 웃음도 깨어지고 일은 끝나고 믿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니까요
다치고 난 뒤의 마음은 아무리 달래도 가라앉지 않겠지만
보고 싶다 몸의 부위를 제외하고 발음되는 그리움은 너무 간절해서 무료함도 얼굴도 너의 골목도 이름도 머금고
좋은 사람들이 모두 가난한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세탁소 앞에 걸린 깊은 빛깔의 반짝이 드레스 같은 것들을 본 날이면 몸이 좋지 않았어요. 천사의 노래를 훔쳐 들은 것처럼 허락되지 않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싶었어요 죄를 지을 두 손을 허락하소서
나를 생각해 나의 운동화 끈을 자주 풀어지게 만드는 사람 나를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보아주는 사람 나를 수줍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에게 나는 친절하고 수줍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지겨운 사람이었어요
종이 뒤에 숨겨진 아이들 바스라지고 작고 마르고 뜨고 짠 아이들
막힌 코를 들이마시며 훌쩍이고 나면 매일의 부스러기를 닦고 나면 나는 지독함에서 점점 더 멀어졌어요
죄를 반죽해 부풀린 빵 조각이 욕실 바닥에 떨어지면 가난한 아이의 잘린 손가락 같았어요 다치고 난 뒤에 나는 그 골목에는 없는 노래입니다
혼자 마음을 키웠어요 돌연변이처럼 사랑하지 않는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면 나는 더 잘 넘어질 수 있었어요
-詩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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