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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동시영 시인 / 그 새가 보고 싶다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4.
동시영 시인 / 그 새가 보고 싶다

동시영 시인 / 그 새가 보고 싶다

 

 

꽃집

쥐똥나무에

새가 날아와 집을 지었다

 

새가 가끔 들러 놀다 간다 했다

 

꽃집 주인은 별장지기가 되었다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언제, 주인이 올지 몰라

오늘도,

가지 사이로 난 푸른 창까지

깨끗이 닦아 놓았다

 

하느님처럼 내려다보는 시선을 뜨고

언제

새가 쉬러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새가 보고 싶다

 

 


 

 

동시영 시인 / ‘챙모자처럼’, 지금을 살짝 눌러 쓰다

 

 

표정은 얼굴의 얼굴

 

‘물끄럼’하던 한낮이

마림바 리듬에 빠진 빗방울들과

시간의 탱고로 들어간다

 

비올까 해날까 망설이던 하늘

햇살 속에 춤춘다

 

챙모자처럼 지금을 살짝 눌러 쓴다

 

악기를 떠나면서

음악이 되는

바이올린 소리처럼

 

해 따라 비 따라 흐르던 하루가

노을 현에 울려 퍼지는 교향곡이 된다

 

황혼 속,

작은 개미가

큰 짐을 나르며 비틀댄다

 

짐이 아니라 목숨을 나르는 거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3월호 발표

 

 


 

 

동시영 시인 / 손잡이

 

 

세상은 익명의 섬

 

이름은

쉽게 들고 다니며 쓰기 위한

손잡이

 

중고 그릇가게

아직 쓸만한 냄비들이 깨끗이 씻기고 있다

새로 살림을 차리러 갈 모양이다

 

직함을 잃고 나온 남자 두어 명

손잡이 떨어진 냄비들처럼

우두커니 구경하고 있다

 

 


 

 

동시영 시인 /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강

 

 

강물은 모든 목숨의 이정표

 

사람들과 낙엽이 서성인다

열리고도 닫힌 문

세상 어디에도

제 집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낚시를 한다

시간의 강으로 나가

나도 낚시를드리운다

 

씨에서 씨까지 가는 한 해

풀림에 놓인 풀들의 발자국이

까만 씨에 앉아 있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있다

아니, 흘려보내고 있다

 

나무에서 시간의 강이 흘러나오고 있다

 

 


 

 

동시영 시인 / 수종사

 

 

봄날

복사꽃이 보낸

옷 한 벌 입고 수종사 간다

 

강물은 멀리 흘러가고

풍경은 다 수종사로 흘러온다

 

물 풍경이 마음을 치고 있다

물의 종을 울리고 있다

 

 


 

 

동시영 시인 / 쌀쌀한 날씨로 쌀을 씻는다

 

 

쌀쌀한 날씨로 쌀을 씻는다

하루를 밥하기 위해

 

시간을 줄넘기 하는 놀이의 살기

혼자 먹는 밥처럼

혼자 하는 말

 

순간을 접는 천 마리의 학이 되는가

모든 목숨은 싸게 팔린다

시간을 말아 쥔 허무의 힘

시간이 상인이다

시간이여 시시각각의 간이역이여

쪼개도 쪼개도 하나 되는 시간의 혈통

침을 뱉어라 시간을 바꿀 수 없는

헛손질의 지금에

 

시간의 지평선 자유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시간의 뼈를 부수라 부수고 만드는 차라리의

깃발이여

 

기쁨말랭이라도 먹고 침묵을 설거지하라

노래를 바람의 휘파람을 불어라

시간이여 낙엽에 부는 휘파람이여

 

살캉거리는 삶을 삶아 먹고

알도 없는 알 낳기의 빈 것

 

단맛 쓴 맛 하는 하루를 기억으로 환산하는가

발가벗은 갈망이여 발그레한 부끄러움이여

쏠뱅이의 쏠쏠거리는 말을 씹는가

씹을 것 없는 빈 입처럼 쉬고 또 쉬는가

 

어둠으로 꾸민

별도

달도

배고픈가 보다

손잡이 없는 숟가락

달이 구름을 퍼먹고 있다.

 

 


 

동시영 시인

충북 괴산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 박사).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인문학부 수학.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 사냥』 『낯선 신을 찿아서』 『신이 걸어 주는 전화』 『십일월의 눈동자』 『마법의 문자』 등. 2005년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 창작 지원금 받음. 2004년 설송 문학상 시 부문 본상 수상, 2010년 박화목 문학상 시 부문 본상 수상. 2011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현재 한국 관광대학 교수.